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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Oct 30. 2024

답정너의 대화법

152 걸음

"회사 때려치고 싶다."

"왜요 뭔 일 있었어요?"


지각했으면서도 당당한 그는 아침부터 나를 불러내 담배를 피웠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휴.. 더러워서 XX. 내가 지금 독립하려고 준비 중이야. 일단 뭐 더러워도 다녀야지. 쩐이 부족하니 어떡하겄냐."


뭔 일 있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볼까 하다 멈췄다. 보통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터놓지 않을 땐 끝내 얘기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날 뭐 하러 불러낸 건가?


"들어갈까?"


내 표정이 어두워 보였는지 별다른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은 채 자리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어~ 어제 잘 들어갔어? 많이 마셨는데 출근 잘했네!"


나만 빼고 술자리를 가졌었나 보다. 하긴 같이 가자고 권했어도 안 갔을 테니 안 부르는 게 맞지. 그들은 다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갑자기 서운해졌다. 나와 친분이 오래 있었음에도 그는 나보다 다른 이와 더 친근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쳐먹기 위해 화면에 집중했다. 생각을 비우는덴 역시 일이 최고다. 특히 단순 반복에 가까운 일을 아무 생각 없이 쳐내다 보면 시간도 지나가고 마음도 한결 나아지곤 한다.


'근데 나 왜 불렀던 거야?'




"점심 먹고 합시다!"


직장인의 꽃.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오늘 마라탕 먹으러 갈까 하는데 같이 갈 사람?"

"저요!"


맵찔이기도 하고 마라와는 상극인터라 나도 모르게 속에서 한숨이 나왔다.


"전 샐러드 먹을게요."

"저도요."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 그룹과 그 외로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솔직히 말하면 샐러드가 아니라 밥을 사 먹고 싶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겸사겸사 살도 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프리맨 우리도 먹으러 갈까요?"

"네 그래요."


입사 동기인 J와는 나이차이가 좀 났지만 입맛이 비슷한 관계로 나름 친해졌다. 성향은 참 다른데 그의 고민을 들어주다 보니 좀 더 가까워졌달까.


유지되던 친분과는 멀어지고 새로운 인연과는 가까워지는 상황이 생기자, 괜히 쓴웃음이 지어졌다.




"회사 때려치울까 진짜."

"왜요."


다음날이 되었지만 전날과 별반 차이 없는 대화로 시작했다. 담배의 맛을 모르는 나로선 냄새가 역한 관계로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최대한 피해 다녔다.


"휴.. 미래가 안 보이잖아. 미래가. 언제까지 이런 구멍가게 같은 데서 일하냐. 월 200만 원. 아니다. 월 100만 원씩만 내 손으로 하고 싶은 일하며 벌 수 있으면 당장에라도 때려친다."


별다른 호응을 할 수는 없었다. 나의 목표는 그와 달리 더 나은 회사로 이동하는 거였으니까. 단순히 개발일을 하기 싫어 지쳐버린 그의 핑계라고만 생각했다.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 내색할 이유도 없었다. 엄연히 [틀림]이 아닌 [다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잘 되실 거예요."


담배를 피우던 그가 날 한번 쓱- 쳐다봤다.


"말은.. 후. 들어가서 일이나 하자."




일 년이 지난 후 그와 나의 삶은 각자가 꿈꾸는 방향대로 이뤄져 있었다.


힘든 과정이 존재했겠지만 결국 그는 자신만의 업을 통해 돈을 버는 이가 되었고, 나는 표면적으로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이직했다. 자연스럽게 접점이 사라지며 그와는 연락이 뜸해졌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갔다. 그렇게 평온하게 무탈히 지냈으면 좋았으련만. 반골 기질을 가진 난 결국 과거의 그가 가졌던 근본적인 고민에 휩싸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보통 그 나이대 쯤해서 유혹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만 잘 넘기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던데 참아봐요. 우리 일 괜찮잖아요."


보통 때 같으면 이 정도 말을 들었으면 진정이 되며 현실을 깨달았을 법도 한데, 왠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알 수 없는 마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오랜만에 그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이다~"

"네에 잘 지내셨어요?"

"아니 못 지냈어. 뒤질 거 같은데?"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했다. 넉살도 좋고 분위기를 리드해 가는 힘도 그다웠다. 함께 일할 때 생각이 나며 문득 그립기도 했다.


"요즘 잘 나가냐?"

"잘 나가긴요. 그냥 풀칠하며 살아요. 형은 좋겠네요. 출퇴근도 자유롭고."

"웃기고 있네. 말을 말자. 니가 뭘 해봤어야 알지. 자영업이 뭐 쉬운 줄 알어?"


코로나 시기와 겹쳤었기에 당연히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상상 이상의 힘듦이 있었나 보다.


"겨우 버티는 거야. 넌 그냥 회사 다녀. 무시해서가 아니라 진짜 뒤질 거 같아서 그래. 밥이나 먹자. 그런데 왜 보자고 했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갑갑했다. 쉽게 감정과 고민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그냥 얼굴이나 볼까 했어요."

"미친 X. 그래도 뭐 그대로네."


말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그리고 카페로 이동해 좀 더 대화를 해보려 했다.


"야. 말 안 할 거면 뭐 하러 보자고 했냐?"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애꿎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쭉쭉 빨았다.


"그냥요. 진짜 얼굴 보려고 부른 건데."

"에효.. 이제 가야겠다. 그럼 담에 보자."

"네."


결국 별다른 대화 없이 몇 년 만에 만난 그를 떠나보냈다.




퇴사 후 오랜만에 그와 연락이 닿았다.


"의외네. 결국 저질렀냐?"

"그렇게 돼버렸어요."

"뭐해먹고살게. 아니다. 뭐 다 생각이 있겠지."

"형은 좀 어때요?"

"나? 나야 뭐 나쁘지 않지. 핫!"

"잘됐네요. 나중에 혹시라도 놀러 오면 연락 줘요."

"그래."


의례적인 인사말로 대화를 나눴다. 역시나 이번에도 별다른 속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그냥 이 정도인가?'


과거에 답을 얻고 싶어 그를 불러놓고도 어째서 물어보지 못했던 걸까?


'왜일까? 왜지?'


그러다 느꼈다. 그와의 대답 속에서 답을 알아채서 그랬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바라는 답을 해주지 않았던 그 시점부터 난 입을 닫아버린 거였다. 단지 그의 찔러들어오는 말이 나를 아프게 만들까 봐, 피했고, 차단시켰던 거였다.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어째서 내게 희망을 심어주지 않을까?


마치 파랑새처럼 모든 해결책은 결국 내 안에 진작부터 있었나 보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밖에서 찾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나 보다. 이제는 알고 있다. 파랑새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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