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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Oct 31. 2024

함께할 결심

153 걸음

혼자서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런 일 중 하나가 [남녀 간의 사랑] 아닐까. 몰랐던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함께하는 삶을 꿈꾸다. 사랑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사랑이 찾아오는 형태 또한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중에서는 꿈꿔오던 사랑을 이뤄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뤘더라도 다른 아픔이 찾아올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건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 같다.


- 요즘 뭐 혼나고 살아요? 안 하던 사랑타령이나 하고.

- 하긴 40대면 사랑이 식을 때도 됐지.

- 혹시 저번에 기.. 위 타령하더니 [위기] 상황임?


그렇지 않다. 자신해서는 안되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맘대로?"

"아니라고?"

"하는 꼬라지가 있던 정도 떨어져 나가게 하는 중인데?"

"..."

"내가 요즘 이혼장려프로그램 보는 중인 거 알지? 잘하라고."


정말로.. 나 요즘 위기인가? 말로만 듣던 위기의 중년??




진단이 필요하다. 과연 나는 사랑받고 살 자격이 있는가?


1. 살림력
2. 공감력
3. 경제력


살림.. 을 꾸려 나가는 능력은 부끄럽게도 점수를 낮게 부여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는 가부장적이지 않음을 강조해 왔지만 내 행동은 가부장제에 절여진 남자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 넘쳤다. 그나마 신혼 초기에 아이가 없을 때는 의욕이라도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있던 의욕마저 사라져 버렸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랬지! 너의 살림력은 0이야‼️"


아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예전 같았으면 입이 댓 발 나왔을 법도 한데, 현실이 그러하니 감히 반박은 못하겠다. 쫓겨나지 않고 살게 해 주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 거.. 남자 망신 다 시키는 거 아니요!


내 유일한 장점 중 하나, 망신당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갖은 핍박을 당해도 "그럴 수도 있어."라며 자연스럽게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를 망신주는 중이라니까?


"괜찮아요. 난 그냥 내 일을 할게요."


- 갑갑한지고..


망신을 당할 이유를 만들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 빌미를 제공했으니 어쩐단 말인가. 이미 당한 망신은 둘째치고 다른 일에 몰두하자. 이런 모습이 쌓이다 보니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갑갑하면 본인이 나서게 됐다. 그런데 쓰고 나니 '이게 장점이라고?'라는 생각이 드네.


그렇다면 아내에게 공감은 잘해주는 편일까?


"내가 오늘 TV를 봤더니~ @#$@#$"

"어.. 어."

"으하하핫! 근데 내 얘기 듣고는 있어?"

"어.. 어."

"오. 빠."

"어.. 어."

"장난쳐?"

"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내가 하는 일상얘기를 들어주는척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이었는데 딱 걸렸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탓에 대충 넘기려던 내 모습이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맨날 내 얘기는 귀담아듣지도 않고.. 나 말 안 해."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얘기해 주면 좋잖아."

"하아.. 됐어."


망했다. [됐어]란 말이 나오질 않게 했어야 했는데. 나의 세계관이 뚜렷한 탓에 관심 밖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눈치 못 채다가도, 계속 말하다가 문득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이다.


"결혼하지 말았어야 될 사람이 결혼을 한 게 잘못이야!"


이로써 공감력도 0에 수렴함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경제력].


"그래 자본주의는 돈이지‼️"


하지만 그 돈도 아내가 벌어오는 중이다. 결국 세 가지의 능력치에서 평균 0에 수렴하는 기염을 토할 수 있게 됐다.


"그런 기염이라면 토하지 말고 좀 삼켜줄래?"


큰일 났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 위기의 중년이 맞나 보다.




'만회가 필요한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지?'


그녀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다. 같이 산 세월이 10년이 넘었는데도 뭐가 이리 어려운 거야.


"뭐 좀 사야 하니까 마트 좀 데려다줘."

"Okay."


마트에 도착해 이것저것 불필요한 물건을 주워 담는 아내를 지켜봤다. 아무래도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은 그저 입을 닫고 묵묵히 바라보기로 했다. 


'얼추 장을 다 본 것도 같은데.. 어? 저걸 안 샀어? 됐다!'


"저기."

"왯!"

"맥주 하나 마셔~"

"칫. 내가 그런 걸로 풀릴 거라 생각한다면.."


말이 떨어지기 전에 들고 온 맥주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 아. 왜 맨날 술 마시게 하려고? 그래도 뭐 시원하겠지? 오늘 밤엔 한잔 던져야겠어."


아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이딴 걸로 풀어질 거라 생각하다간 큰코다쳐? 잘하란 말이야."


아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난 분명 원치 않는 독신이 되었을 거다. 가뜩이나 애정결핍도 강한 편인데 얼마나 외로운 중년의 삶을 살고 있게 됐을까?


앞으로 내 목표는 하나. 이혼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비록 [살림, 공감, 경제]력의 세 가지를 잃었지만, 해낼 수 있다. 아니 해내자.


기적적으로 만난 미지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을 해 아이도 낳고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동화 속에서 많이 봐왔던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았답니다 껄껄]과 같은 결을 맺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위에 쓴 마법의 문장에는 분명 둘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노력이 생략되어 있을 거다. 지금부터의 내 노후가 평안에 이르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이 뒤따라야 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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