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걸음
이번에 아이폰 OS 업데이트와 동시에 [통화녹음 기능]과 [클린업]이 추가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화녹음은 기존에 [에이닷]을 통해 사용 중이었어서 크게 새롭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클린업이라고 하는 AI를 활용한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 중 하나를 활용해 사진에서 특정 영역을 지워낼 수 있는 기능이 기대됐다. 물론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도 같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니 애플 고유의 기능은 아니긴 하다.
"우.. 우와. 이렇게 동그랗게 영역을 체크하거나 반짝거리는 사물을 클릭하면 사라져‼️"
"아빠! 저도 해볼게요! 대박 좋다."
"네 폰도 업데이트하면 기능 생기니까 기다려봐~"
이때만해도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기능을 요리조리 톺아보며 감탄을 하던 중 큰 아이가 다가왔다.
"아빠! 업데이트했는데 문제가 있어요. 왜 내 건 클린업 안 나와요?"
"그럴 리가. 제대로 해봐."
"진짜예요. 봐요!"
"휴.. 제대로 좀 보라니까?"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며 아이의 폰을 집어 들어서 확인했다.
"어? 진짜로 없네?"
"거 봐요! 아 뭐야. 왜 아빠폰만 기능 있고 내 건 안 되는 건데? 완전 고물이잖아? 아 몰라 버려 버려! 아이폰 12 미니 고물탱이!"
아이의 선 넘는 말에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꾹 참고 지원되는 기기를 살펴봤다.
[아이폰 15 pro부터 최신기종까지 지원됨‼️]
...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야 한다.
"몰라. 아빠가 쓰던 거 물려준 게 고물이라서 준거잖아? 아 나 안 써! 아빠만 좋은 거 쓰고."
"근데 그거 알아? 통녹 기능 생겼다더라. 그거 테스트해 보자."
"아니 왜 나는 클린업이 되질 않냐고! 아오 세상 다 망해버려라!"
"어이? 그게 무슨 말이냐?"
주춤거리던 아이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그제야 슬쩍 눈치를 보고는 화제를 바꾸려했다.
"통녹이 뭔데요.."
"통화녹음이 된다는 얘기지. 우리 해볼까?"
"아 그게 뭐 어쨌는데요?"
툴툴거리는 말투와 달리 우리는 테스트에 들어갔다.
"This call is recorded-"
"아 뭐야. 왜 아빠 영어 써요?"
"아냐. 내가 안 썼어."
"근데 뭐예요? 뭐라는 거야?"
"통화되고 있다고 알려주는 거야.."
"아 안 써‼"
"쓰지 맛!"
결국 iOS 18.1 업데이트로 인해 파국을 향해가고 있는 우리였다.
잠시 소강상태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괜히 아이한테 기능 자랑하다가 꼴좋네.'
그렇다고 당장 고가의 폰을 턱 하니 사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고, 솔직히 사줄 의향도 없다. (아직은 저학년인 아이에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지금 물려준 폰도 쓸만한 편이라고.
"형..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해. 난 폰도 없어.."
1학년인 둘째는 폰이라도 가지고 있는 형이 내심 부러웠는지, 우리의 대화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듯했다.
'클린업 기능이 어쩌고를 떠나 폰이 없다니까? 너희들은 좋겠다. 폰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이런 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둘째는 침울해 보였다. 철저히 우리의 대화 속에서 소외된 탓이겠거니. 그 한마디에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나와 큰 아이도 정신을 차렸다. 그래.. 우리가 지금 이런 소모적인 대화를 통해 언쟁을 벌일 때가 아니지. 그제야 비로소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화해를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클린업] 기능은 꽤나 쓸만한 거 같다. 간단하게 잘못 찍혀서 없애고 싶은 사물이나 사람을 지울 수 있다면 후보정을 덜해도 되니까. 기술은 참 단기간에 발전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기능에 해당하는 작업을 위한 디자이너가 필요했는데, 이젠 터치 한 번 혹은 동그라미로 영역 표시하면 되는 세상이라니.
'10년 뒤엔 대체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까?'
우연히 페이스북에 접속했다가 10년 전 과거에 썼던 포스트를 상기시켜 주는 알람을 확인했다. 내용을 보는 순간 마치 험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미간이 찌푸러졌다.
'미쳤네.. 이딴 글을 쓰고 살았었다니.'
손발이 사라지다 못해 지느러미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다. 10년 전의 난 현재 내 삶의 모습을 예측이나 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마찬가지로 10년 후의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다. 단지 해당 시기에 적응하는 내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까?
바라는 바가 있다면 10년 뒤에도 아이와 지금처럼 투닥거리더라도 대화 나눌 수 있는 아빠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만 돼도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