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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23. 2024

불혹, 40대를 일컫는 이명

167 걸음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 논어 위정 편, 공자


이 중에서 내가 해당하는 나이는 바로 [불혹]이다.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지금보다 어렸을 땐 당연하게도 40 이상이 되어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40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참고로 남자 기준이다.)


1. 벗어진 머리

2. 늘어진 두둑한 뱃살

3. 담배 찌든 냄새

4. 고단함이 묻어 있는 주름진 얼굴

5. 꼰대


하나 같이 좋아 보이는 건 없었다. 너무 극단적이고 안 좋은 상황만 생각한 거 아니냐고? 그렇긴 한데 내가 봐왔던 40대의 모습 중에 없진 않았었다. 그리고 성향상 안 좋은 상황을 먼저 떠올리기도 하니, 내게 있어 40대는 기다려지기보단 오지 않았으면 싶은 그런 시기였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결국 바라지 않던 40대가 기어코 찾아오고야 말았다.




주위에서 꼴 보기 싫어할 정도로 거울을 많이 보곤 했다.


"자아도취가 심한 편이네?"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뭐가 달라져?"


그냥 거울 속에 맺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취미였다. 잘생겨서가 아니라 그냥 거울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을 좋아했다.


- 혹시..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거나..?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수준까지 가진 않았다. 그렇게 틈만 나면 거울을 보던 습관이 남아선지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가끔 거울 앞에서 멍 때릴 때가 있다.


"어? 이게 언제 생겼지?"


몇 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어느 순간 얼굴에 거뭇한 자국이 생기는가 싶더니 점처럼 변하다가 넓게 퍼지는 게 아닌가.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검버섯]?! 그 뒤로 거울을 보며 계속 우울해졌다.


무식하게도 손으로 떼면 떼어질까 싶어 긁었다가 부위만 더 넓어지기도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어딘가 뒤틀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보. 나 얼굴에 이거 생겼는데 어떡하지?"

"아 뭔데? 휴.. 티도 안나. 내가 검버섯 훨씬 많거든?"

"(듣는 둥 마는 둥) 하아.. 피부과 가서 떼어낼까?"

"그럴 돈 있으면 나나 시켜줘. 아니 세상 어느 남편이 아내는 신경도 안 쓰고 본인 얼굴만 그렇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한번 눈에 들어온 검버섯 네이놈. 기필코 언젠가 없애고 만다.




20대부터 30대 초까지 자주 어울리던 동창이 있었다. 온라인에 특화된 사람인지라 우리는 주로 채팅을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서로의 세계에 취해선 다시 생각하기도 낯부끄러운 대화를 나눴었다.


[불혹.. 왜 공자선생님은 40대에 미혹에 흔들리지 않게 됐을까?]

[야. 그거 다 힘이 없어서 그래. 체력도 안 돼, 의욕도 없어, 머리도 벗어져. 무슨 낙이 있겠냐?]

[그런가?]

[당연하지. 그러니까 미혹이든 유혹이든 상관없어. 다가와도 감당이 안되는 거야 그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40대 이상의 삶을 논하고 있었다.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 어느 정도 그때 나눴던 말에 공감 중이다.


- 머리 벗어지셨음?


그것만큼은 다행스럽게 막았다. 물론 약은 복용 중이다.


- 그런 것까지 물어본 적은 없는데요?


있을 때 지켜야 하는 법. 30대 이상부터 남자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머리카락 지키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카락의 유무가 미래의 인기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오빠.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데? 어디 나도 좀 들어보자. 나한테 잘 보이려는 게 아닌 건 확실한데? 너 누구 만나니?"

"그럴 리가. 난 이미 체력과 열정이 다 타버린 평범 이하의 40대남이라고."

"돈도 없잖아."

"그.. 그렇지."


기어코 아픈 구석까지 파고들어 공격하다니 대단한걸. 머리카락 얘기가 나와서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그만큼 40대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머리카락]이다. 아.. 아니다. 이게 어쩌다 이렇게.




공자 선생님과 달리 40대의 난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 시절 겪지 못했던 게 뒤늦게 찾아왔나 보다.


"내가 봤을 때 오빤 늘 그 모양이었어. 언제나 제멋대로에-"

"쉿 거기까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디스는 못 참는다구. 의자왕이 그토록 아끼던 성충을 결국 쳐 내버린 심정이 이해가 된다.


"더 이상 날 자극한다면 이 시대의 성충은 그대의 몫이 될 것이야."

"성충이 뭔데? 유충 뭐 이런 거랑 비슷한 거야?"

"..."


쳐낼 필요조차 없겠다. 알아서 쳐내지겠구나.


"어디 그렇게 무시해 봐! 집에서 어디 내 쫓겨나 볼래?"


이러다가 내쳐지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몫이 되겠구나.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는 이쯤 하고. 이래 봐도 내가 메타인지는 좀 되는 편이다. 상황 파악도 제법 하는 편에다가.


- 아무리 봐도 눈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보이는데요?


괜찮다. 난 자타공인 40대남. 그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뭐 좀 언짢은 소리 한 두 개 듣는 것 정도로는 끄덕없다구.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매일 휘청거린다. 별 뜻 없어 보이는 말에도 여전히 상처받고, 반대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은 50대가 되어 하늘의 뜻을 알 나이가 되더라도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 하나조차 몰라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주어진 40대의 삶이 이러하다면 감내하며 그저 나아가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부침 있는 일상을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겠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언젠가 공자님이 말했던 불혹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가지며 앞으로의 삶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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