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걸음
'올해 책을 몇 권이나 읽었더라.'
세어가며 읽진 않았는데 문득 한 해가 얼마 안 남았다 생각하자 괜히 궁금해졌다. 편차가 있음을 감안하고, 보통 달에 2-3권 정도였지 않나 싶다. 어떤 달에는 평균치를 훨씬 상회할 때도 있었긴 한데 크게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니 패스. 대충 계산해 보면 앞으로 남은 12월까지 합쳐서 약 24-36권 정도의 독서를 한 셈이다.
- 별로 안 읽었네요? 시간도 남아돈다면서 뭐 한 거죠?
흠.. 그러게 생각보다 많이 읽진 않았네. 게다가 올해는 일부러 문학에 치중해 읽어서 읽기 어려운 책은 많이 피한 편이기도 했다. 물론 문학도 난해하거나 읽기 어려운 책이 존재하지만 전문서적에 비하면 받아들이기가 쉽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실 다독이 독서의 절대적인 기준치가 아님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양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이상 독서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경우는 다를 수 있겠지만, 재직 시절 내가 탑코더의 위치로 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잘 짜 놓은 소스코드 분석]을 게을리했던 탓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잘 만들어 놓은 혹은 잘 쓴 작품을 꾸준히 읽으며 내재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내 기준에서의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좀 더 게으름 부리지 않고 독서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읽은 것들을 좀 더 보탤 수는 있다. 무릇 일반적인 책의 형태가 아닌 온라인의 글이라거나 기사, 웹소설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글도 포함시키면 좀 더 읽은 양이 많아질 수는 있겠다.
- 다독 자랑대회라도 나가려고요? 갑자기 독서량에 대해서 쓰는 의도를 모르겠는데요.
별 거 없다. 그냥 한 해가 지나가려 한다 생각하니 되돌아본 것뿐이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해 보면 년에 10권도 못 읽던 때가 있었으니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거 같긴 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잘하는 사람은 목표가 분명하고 노력의 방향이 확실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편인 내게는 처음부터 불분명하고 불확실함이 뒤섞여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삽질했네..'라는 허탈함과 함께 [원점]으로 되돌아갈 때가 많았다.
보통 방향을 잃었을 땐 [나침반]을 보면서 최소한 방향만큼은 제대로 찾는 게 도리이거늘. 무턱대고 감에 의존해 헛고생만 잔뜩 하다 뒤늦은 후회를 할 때면, 스스로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경쟁자로 여겼던 상대는 저만치 멀어져서 격차만 벌어졌다.
이룬 건 없고, 마음은 조급해지니 잘못된 선택이 뒤따랐다.
정석이 아닌 편법으로 벌어진 격차를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에 꽂혀선, 해야 될 일이 아닌 방식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겠는데?'
결국 남은 건 포기뿐이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이런 사이클의 반복이 내 삶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도 멀어지고, 해오던 것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걸 찾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
"이제는 제발 굴레에서 벗어나자‼️"
다짐만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진작에 벗어났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이번만큼은 달라지길 바랐다.
모든 포기의 근원을 떠올려 봤더니 [욕심]이 첫 번째로 생각났다. 뭔가를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것까지는 분명 괜찮았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던 걸까. 아마도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최소 100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일을, 10 정도의 노력만 해보고 따라잡길 바라던 마음.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노력 뒤에 '할 만큼 해봤는데 안되잖아?!'라며 자책하던 모습. 그 뒤엔 노력대신 쉽게 따라잡을 방법에 몰두하곤 했었지. 마치 게임 속 트릭이 존재해 쉽게 미션을 해결할 수 있던 것과 동일한 무언가가 현실에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내 앞에 줄 세워져 있는 앞서가는 이들은 분명 나보다 먼저 그 방법을 깨우친 자들이겠거니!
순수한 노력은 그렇게 변질되어 가기 시작했고, 한번 변해버린 마음을 되돌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만큼은 욕심을 없애도록 하자. 정확하게는 과욕.'
욕심이 삶의 원동력이 될 때가 있었다. 언제나 경쟁했었고 경쟁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잘 해내고 말겠다는 [욕심]이야말로 중요한 요소라 생각했다. 분명 내 생의 어딘가에선 정답에 가까운 결과를 내는 성공 방정식이었음을 부정치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방식을 버려야 할 때다. 과거의 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계로 온이상 변화해야 한다. 관점을 바꾸고 행동의 방식을 뜯어고치는 일이 필요하다. 구태의연함을 유지하는 이상 행운마저 나를 외면할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절대다수에게 보이던 [적대감]과 [경쟁의식]을 지워내야 한다.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욕심의 목표와 방향을 바깥이 아닌 내게로 향하도록 하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과시하고 싶어 했던 모습을 이제는 정말로 지워야 할 때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많은 [보여주기]에 치중해 왔던 삶이 아닌가. 결국 노력도 원하는 삶의 모습도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함에 가까웠지 않은가. 한때는 그랬을지언정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되는 지양해야 할 삶의 자세다. 경쟁과 욕심의 목표를 수정하도록 하자.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오늘의 내가 되는 것으로.]
추가적으로 우물 속의 개구리가 될 수는 없으니, 방식의 다양성은 외부에서 받아들이자. 내게 있어 독서는 이와 같다. 올해 난 단순히 24-36권 사이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의 다양성을 생각해 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 결국 자기 최면 엔딩?
Agree 아니 Accept. 의견을 수용하도록 하겠다. 자기 암시나 최면과 통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믿는다. 분명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아쉬움은 털어내고 나아질 모습만 떠올리며 생을 살아가자. 글을 마무리 지으면 못 다 읽은 책이나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