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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28. 2024

낯선 것과 친해져 볼까 하는데.

172 걸음

액션캠 가지고 다니기 너무 불편하고 귀찮다. 새삼 들고 다니며 브이로그나 각종 콘텐츠를 찍는 유튜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살 때부터 금방 질릴 거 예상했는데 역시..


그러게 쉽지 않네.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와의 동행은 참 불편하다. 그래도 이대로 방치해 놓을 순 없으니 챙겨 다니자. 백팩 한 구석탱이에 캠을 집어넣었다. 가지고만 다닌다고 친해질리는 없으니 (익숙해질 리) 뭐라도 찍기는 해야겠지?


애초부터 뭘 찍어야겠다 또는 찍고 싶다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냥 멍한 상태. 테스트로 대충 주변을 찍어 봤는데 입을 못 떼겠다.


'말재주는 없는 걸로.'


그다음으로 찍어본 건.. 노트북으로 필사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찍었다. 별 게 없다. 그냥 노트북에 내 손가락과 키보드 화면 그리고 살짝 비치는 화면이 전부. 보통 필사하는데 30-40분 정도 걸리는데 이 과정을 여과 없이 찍었다. 그렇게 마주한 결과물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노. 잼.


ASMR도 아니고 뭔가 깊은 명상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아닌 오묘한 영상. 그래도 일단 찍었다. 편집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단 무작정 카메라와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지금으로선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뭐라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다른 유튜버들은 대체 어떻게 다들 창의적이고 행동력이 좋지? 나와는 다른 종족인가?'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인간이지만 할 수 있고 없는 능력의 차이가 너무도 심하다. 내 곁에 있는 캠은 아무래도 주인을 잘못 만났다. 친해질 수는 있는 걸까? 지금으로선 도저히 모르겠다. 별다른 도리가 없으니 일단 하던 대로 필사 과정이라도 계속 찍어는 봐야겠다.


이토록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나 강제로 나의 하루 안에 집어넣었다. 시간은 널널하지만 막상 뭔가가 하나 쑤욱하고 자리를 차지하자 불편하다. 귀찮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단전에서부터 끌어 오른다.


잠. 깐. 만‼


'설마 이것이 진입장벽?'


모르긴 해도 나처럼 충동구매로 캠을 사고 방황하는 이가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야 자주 보던 혹은 관심 있게 시청하던 유튜브 채널처럼 만들겠노라며 호기를 부려보기도 했을 테지. (사실 내가 그랬다.)


출처 - https://enews.imbc.com/M/Detail/336236


'액션캠과 의지만 있다면 뭐라도 찍을 수 있어! (아니!)'


그저 액션캠은 액션캠이고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사는 것과 동시에 찍는 스킬도 늘어나고 아이디어도 막 샘솟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겠지.


결국 찍으려 한다면 다시 그만큼의 시간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통은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혹은 더 심하게 발생할 수도 있을 거 같다.


- 그렇게까지 해서 찍어야 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맞다. 내가 꼭 뭔가를 찍어서 남겨야 한다는 법도 없다. 굳이 내가 찍어 올리지 않더라도 이 세상엔 이미 재미있는 콘텐츠가 흘러넘친다. 그중에 내가 몰래 숟가락 올릴 틈은 없지 않을까?

일단 숟가락 생각하기 전에 '도대체 뭘 찍고 싶은지?' 정도는 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것이 어쩌면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진입장벽]이자 [도전과제] 임이 분명하다.


무엇을 어떻게 찍고 싶은지?

어떻게든 찍고는 있는지?


하나 더 추가하자면.


지속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 본인 일인데 지켜보긴 뭘 지켜봐?


참.. 내 일이지. 여하튼 계획 없는 충동구매의 쓴 맛을 톡톡히 보는 중이다. 한국인은 장비빨이라며 장비부터 지르다간 딱 내 꼴이 되어버린다. 이미 액세서리까지 잔뜩 질러놓은 마당에 못해먹겠단 소리를 함부로 내뱉다간 당장 아내의 눈빛부터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일단 글로 읽게 만들어서 충격을 조금씩 완화시켜 놔야겠다.


- ......?




아무튼 사놓기는 했으니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내 탓이 될 예정이다. 안 쓰고 돈을 날리는 것도 내 탓, 노잼인 영상을 찍는 것도 내 탓, 벼락 맞을 확률을 뚫고 꾸준히 영상 제작을 해보는 것도 내 탓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 본질이 중요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감히 논할 수 조차 없는 주제다. 그저 찍어서 볼 수 있는 정도로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다.


- 글을 쓰는 동시에 굳이 영상은 뭐하러 한다고 설치기는 설쳐서..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거나 하면 돈과 시간이 사라진다.]라고 방금 만들어냈다.


그렇다.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어쩌면 이득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남들 뜯어말리는 투자를 고집하다 가졌던 돈을 날린다거나, 하던 일 대신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하다 시간을 날려먹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그리고 이번 차례는 내가 될 예정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땐 특히 그런 마음이 컸던 거 같다. 소위 잘 나가던 사람이 뜬금없이 본인 커리어와 무관한 뭔가를 진행하다 망하는 모습을 보면 손가락질하는 데 내 손을 하나 보탰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망할 때 망하더라도 여한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의 삶이 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왕이면 망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상황일 테고.


별다른 마음은 없다. 영상을 찍는 취미를 하나 만들어 보려는 것뿐이다. 그러다 운 좋게 습관이 되면 더 좋고. 더 운이 좋으면 양질의 콘텐츠도 만들어서 수익..


- 뭐야 별다른 마음이 이미 있구만? 벌써부터 잿밥에 눈이 멀어서 쯧..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여하튼 현재는 불편한 사이인 카메라와 조금은 친해져 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 맘대로 될 리 없겠지만 일단 먼저 손을 내밀어 보려 한다.


'반갑다 친구야. 잘 지내보자.'


퇴짜 맞지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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