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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29. 2024

안되는덴 이유가 있지 않겠니?

173 걸음

평소처럼 유튜브를 켜서 휙휙 넘기던 중 서현진 배우가 출연한 영상이 떴다. 평소 그녀의 팬은 아니지만 썸네일을 보자 저절로 손이 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CUyBA_rWAUA


'무엇 때문이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보통 썸네일을 선정할 때 어느 정도의 낚시가 있음을 감안하며 재생했다. 


영상 속 그녀는 배우이기 전 인간 서현진으로서의 젊은 생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전했다. 이른 데뷔와 달리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기까지 그녀에게 긴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기도 하고 '역시 잘된덴 이유가 있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오늘 이야기가 감상문에서 그칠 생각은 없으니 이쯤 해야겠다.


영상 속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그녀가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 오래도록 그녀를 옆에서 지켜봐 온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한 말.


"안되는덴 이유가 있지 않겠니..?"


덤덤한 어조로 이 말을 전하는 그녀의 모습과 내 상황이 겹치며, 마치 내게 들리는 말처럼 느껴졌더랬다.

영상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무언가 생각하고 정리하기 전에 일단 이 말을 메모해 뒀다.





언젠가의 나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결코 그 말이 악의에서 나온 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듣는 순간 서운함이 가득해졌었다.


'사실은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확인사살]. 너무나 아팠다. 맞는 말이라 생각하기에 더 발끈했고 방방 뛰기까지 했지만, 나의 어떤 행동으로도 상대를 설득할 수 없었다. 이룬 거 없이 말만으로 잘되리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기간이 점점 길어지다 보면 더 이상 말로 메꿀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다.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게 더 비참하다. 그러면서도 놓을 수 없는 건 무슨 까닭에서 일까?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시간대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는 상황 속에 내던져진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삶이란 얄궂게도 그 시기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의 선택이 모든 결과를 만들 뿐이다. 꾹 참고 이뤄내 후일담을 읊거나,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다 결과 없이 이슬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그 어떤 선택도 쉬운 건 없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시간과 인생이 들어가는 일 앞에선 누구나 두렵지 않을까?




영상 속 그녀는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말했다.


[대책 없이 성실한 것]이라 했다.


잘된 지금에서야 그녀의 말에 '역시 잘되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니까?'라며 추켜 세워주겠지만, 과정 속에 있는 이가 이와 같은 말을 한다면 수많은 참견을 이끌어 낼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아예 무관심 속에 기억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면서도 같은 이유로 나는 내 속에 가진 [성실함]을 함부로 끄집어내지 못하겠다. 마치 그녀의 말처럼 정말로 [대책]이란 게 없는 성실함일까 봐서다. (결과를 이뤄낸 그녀는 결국 [성실함=대책]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말이든 글이든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결국 화자의 이뤄낸 것 현재 모습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난 여전히 멀었고, 계속해서 증명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 과정은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고 별다른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단지 매 순간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 정도로 정리하면 좋겠다. 하룻강아지가 힘으로 질 걸 알면서도 호랑이 앞에서 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도. 내게 이런 기세마저 꺾인다면 그때는 추락의 속도만이 날 빠르게 밑으로 끌어당길지도 모르지 않겠나.




"되는데도 이유가 있지 않겠어?"


[안]이라는 글자가 있고 없음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보통은 [방어기제]때문인 거 같지만, 뭔가를 함에 있어 나부터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생기더라도 일단 [나]는 지켜야지.'


100% 올인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나에 대한 보호가 꽤나 지분을 갉아먹는 탓도 있으리라. (올인하는 상황이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안될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될 이유를 만들고 찾아내려는 노력은 어째서 하지 않는가?'


매일이 무너지고 두려움의 연속이라면, 환경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폭력적인 상황에 무방비로 날 던져놓고 휘둘리게 만든 내 탓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될 이유]를 만들어 보자.


1. 나이가 벌써 40대인데 너무 늦은 거 아니야?
-> 50대에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2. 두려워서 손이 가질 않아.
-> 아무것도 안 하려 하면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긴 할까?

3. 주변의 평가가 무서워.
-> 내가 변화하고 이뤄낸 가치에 따라 평가는 유동적으로 변하겠지. 그리고 그런 평가 하나에 삶이 끌려다니는 게 더 비참한 거 아닐까?


여전히 내게 유효하게 작동하는 마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기 합리화]다. 잘만 활용한다면 큰 비용 없이 좋은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매직. (너무 과하면 허언증이 될지 모르니 조심해서 사용하도록 하자.)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버텨나가는 것]이 아닐까. 남들이 뭐라 쑥덕거려도 "I'm fine. 괜찮아."라며 쿨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내가 되는 일. 그리고 나의 노력을 쏟아붓는 일.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힘이 모여 50대의 내가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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