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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30. 2024

소년에게서 중년에게

174 걸음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중략)

[해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국어시간에 졸지 않고 공부하기를 참 잘했다. 평소 시라고는 거의 읽지 않다 보니 내게 있어 시를 접할 수 있던 유일한 합법적인 창구는 수업시간뿐이었던 거 같다.


- 노래 정도는 듣지 않나요?


노래는 거의 매일 듣고 있다.


- 가사가 시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


- 시라는 형식이 꼭 텍스트에서 그쳐야만 한다는 편견을 버려요. 시는 어디에도 활용될 수 있고, 삶의 많은 부분에 침투해 있답니다.


그렇구나. 시를 각 잡고 읽지 않았다 해서 접하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잘못돼 있었구나. 


도입부에 가져온 시는 내용은 다를지언정 같은 제목의 노래도 존재한다. 고등학교 시절 애니(영혼기병 라젠카)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삽입되어 있던 노래들을 흥얼거리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가져와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0QG9QNVao




지금도 고등학교 과목으로 존재하는지는 귀찮아서 알아보지 않았는데, 라떼는 말이지, [문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같은 학교 동급생 친구 중에 문학 수업을 좋아하는 애들은 생각보다 없었다. 


수능 과목 중 [언어 영역]의 연장선으로 볼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완벽히 꼭 들어맞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문학 선생님의 엄격함과 까다로움이 해당 과목의 이탈자를 무수히 많이 생산해 냈었다.


다른 학교의 문학 선생님은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우리 학교의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독특했었다. 일단 시험 범위나 난이도에 있어서 절대로 [타협]이 없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거침없이 문제를 출제하기로 아주 유명했다. 그 결과 학생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최악을 달렸고 그로 인해 조롱과 탄식이 뒤섞인 별명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난이도로 말하자면 어느 정도였냐. 전교 10등권의 아이들 중에서도 문학 점수에서 80점 이상을 기록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난히 점수를 올리기는커녕 대놓고 까먹게 만드는 과목이었던 것이다.


- 본인은 점수 잘 받았어요?


"후후.."


- 아?! 왠지.. 불안한데.


이거 이거. 대놓고 자랑하기는 좀 그렇지만.


- 그냥 대놓고 하쇼! 어차피 그렇게 빌드업하고 있었으면서 쯧.


나로 말하자면 다른 과목에서 말아먹고 대신 문학에서는 80점 이상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문학에서도 말아먹은 적이 있었지만..)


보통 자신의 과목을 잘 보는 학생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선생님이 있기 마련인데 문학 선생님은 타협이 없는 성격이었기에, 내가 점수를 잘 받아도 특별 대우를 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험을 잘 보는 이유가 선생님의 이목을 끌기 위함에 있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다른 과목에서는 특출 난 점을 보일 수 없었던 아이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감, 자존심 같은 문학 과목 점수 하나가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


- 거기까지 하고, 문학 점수 잘 받은 얘긴 뭣하러 하는데요?


"그냥 자랑이 하고 싶어서."


- ...... 


라고 쓰면 동방예의지국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이 될 테니(사실 난 생각보다 소심한 소시민이라 평균의 범주를 뛰어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 내보겠다. 


학생 시절을 떠올렸을 때 내게 있어 [책이 주는 의미]는 뭐였을까?


나에겐 낭만()이란 게 있었다. [물결 랑]에 [흩어질 만]이라는 뜻을 가졌구나. 뜻만 봐선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가 않는데? 낭만의 어원이 궁금하다면 링크를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학생 시절 평범했던 하루 일과를 써보면. 2교시쯤 도시락을 잽싸게 까먹고, 점심시간이 되면 햇볕 좋은 혹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진 벤치를 찾아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아니면 도서관에 찾아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책을 꺼내 무작위로 읽기도 했었고. 매일 그랬던 건 당연히 아니다. 체육활동을 한 적도 있으며, 분식을 사 먹으러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 그게 그대의 낭만??


이런 얘기를 아내에게 했을 때 코웃음을 쳤다.


"오글 거려서 아주 못 봐줄 정도의 닝겐이었구만."


나의 낭만과 아내의 낭만은 합치에 이르지 못했구나.


아무튼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문학 시험 점수를 잘 받은 이유랑 통하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남들 공부할 때 소설책 읽으며 낄낄 거리던 취미를 가졌던 내게, 문학 선생님은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같은 낭만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 그럴리는 없어 보이니 걱정 ㄴㄴ.


거짓말이 아니라 평소 독서하던 게 문학 시험에 도움이 됐었다. 출제자의 의도(라 하고 선생님의 의도)를 잘 짚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살짝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하필 수능 출제자의 의도는 잘 캐치하지 못했다는 거다. 반대 상황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저런 이유는 뒤로하고, 문학이라는 과목의 압도적인 난이도와 의외로 독서취미를 결부시킬 수 있었던 덕에 지금까지도 독서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랄까? 


'책을 읽는 건 단순한 취미였을 뿐인데, 과목 점수까지 잘 받을 수 있다고? 이거 완전 럭- (유행 지난 밈 사용금지!)'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시험문제의 유형이 어떠했고, 어떤 지문이 출제되었는지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그때의 인상만이 흐릿하게 남아, 오늘의 글로써 기록되는 중이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흐릿해진 만큼, 잘못 혹은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독서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인생이 참 별거 없다. 뜻하지 않은 우연과 운일지언정 내게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한 순간이 있다면 그로 인해 좋은 순간을 간직할 수 있다. 지금의 날 보면 알 수 있다.


시간부자인 척하는 백수지만, 과거에 연연하며 '그땐 낭만가이였지..'라고 회상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쓰려던 건 아니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찾고 한다는 것도 비슷한 거 같다. 별거 아닌 혹은 왜곡된 기억에서 파생된 좋은 기억 하나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이 설명이 돼?'. 아무튼 주말을 맞이해서 한번 추억여행을 떠나봤다.


좋은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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