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49금에 관한 이야기

175 걸음

by 고성프리맨

[19금을 결정하는 기준]


주제 - 성인들만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무자비한 모든 표현들, 극단적이지 않은 반사회적인 사상, 증오심 유발 또는 선동

선정성 - 자극적인 나체 표현 또는 선정적인 내용

폭력성 - 잔인한 폭력과 반사회적이거나 혐오스러운 내용

대사 - 빈번한 차별적 / 비하적 언어, 매우 저속한 언어

공포 - 공포감을 심히 야기하거나 매우 기괴한 표현들

약물 - 빈번하고 자극적인 약물 사용

모방위험 - 구체적인 범죄, 도박, 자살/자해, 위험 행위 묘사 또는 일방적인 미화


나무위키 참조




고등학교 시절 19금에 대한 환상이 상당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별 거 아닌 내용에 호들갑을 떤 것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엔 엄청난 흥분과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기준]중에서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끌리게 만들었던 건, 단연코 [폭력성]과 [공포]였다. 세세하게 따져보면 위에 써진 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걸 보긴 했지만, 특별히 선정하다 보니 두 가지가 남았달까.


당연하겠지만 요즘처럼 쉽게 콘텐츠를 얻을 수는 없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의 콘텐츠를 구하려면 어둠의 루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통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1. 업자와의 접선

2. 와레즈


무슨 얘기인고 하니.


좀 더 비싸지만 편하게 돈 내고 구입하거나 혹은 수고롭지만 직접 구하는 방법으로 정리된다.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자]와의 첫 만남은 무서웠다. 아무래도 학생 신분인 상태에서 사회생활 만랩처럼 느껴지는 어른을 상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학생으로서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비용 책정이 되어있어서 하나를 사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대신 보장된 퀄리티와 수고를 아낄 수 있어서 편했다.


[와레즈(Warez)] 이 단어를 얼마 만에 써보는가. 당시에 영어도 못하면서 게임잡지나 PC통신 게시판 등에서 접한 정보를 토대로 다가갔던 기억이 난다.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도 했었다.)


당시 모뎀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기에 직접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외하곤 사실 업자한테 직접 사는 것보다 더 비싸게(?) 구하면서 품질 보장도 받지 못했던 거 같은데, "내가 직접 구한다 이 말이야!" 행동의 주체성 때문에 끊지를 못했다. 영상의 경우엔 용량도 어마어마했기에 풀영상을 다운로드하다가 엄청난 금액의 돈이 집으로 날아오기도 했다.


'19금 콘텐츠가 뭐길래......'


당시엔 뭐에 씌기라도 했는지, 기를 쓰고 모으는데 집중했었다.


그 덕에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다소 괴상하고 기분 나쁜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게 됐다. 이후 나의 성장에 있어 악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즐거웠으니..




'제약이 생기면 깨버리거나 어기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 그건 님만 그렇고요.


약간은 반발심에서 비롯된 심리가 아닌가 싶다. 한편으론 "난 니들과 달라? 봤지? 앞서가는 사람이라고."라며 과시욕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학생신분으로서의 최대 일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태생이 쫄보인 탓에 가출이나 비행 같은 건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얻은 19금 콘텐츠는 황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에 가깝다. 물론 게 중에는 여전히 명작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기억 속 한편으로 치워져 버린 지 오래다. 들인 시간과 돈에 비해서는 별로라고 할 수밖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스스로 챙긴 자존감(?) 정도였다.


그토록 흐르지 않을 것처럼 멈춰있던 시간도 결국엔 흐르더라. 자연스럽게 20세가 되었고 나를 옭아매던 숱한 제약으로부터 [해금]되었다.


마냥 신날줄만 알았다. 더 이상 불법으로 구할 필요도 없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흥미가 사라졌다.


모든 걸 할 수 있게 되니, 흥미도는 반비례하며 급격히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주변의 또래층에서도 원하면 쉽고 편하게 구할 수 있게 되자, 나만의 자존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순간 알량하게 남아있던 무언가도 사라져 버렸다.


세상의 기술은 점점 발전해 이제는 전보다 통신비도 적게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 접근성이 어려웠던 정보에 다가서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한때는 쉬쉬하며 알음알음 알아야만 했던 정보가, 고작 몇 글자 타이핑만으로 쉽게 획득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이때쯤 내가 땄던 자격증이 하나 있다.


https://m.yes24.com/Goods/Detail/1951199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인터넷 정보검색사]. 지금 세상에서 정보 검색을 못하는 사람은 없으니 무용하기 이를 데가 없다.


더 이상 내가 자부하던 19금 콘텐츠에 대한 구매 경로 따위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기술도 아니고, 특별히 인정받을 만한 경험도 아니고. 내가 원했던 건 남들이 구하기 힘든 어려운 걸 구했다는 자부심이었음이 분명하다.




이후 모래성처럼 쉽게 허물어져 버리는 악덕한 취미(?) 같은 데에 나의 노력을 쏟지 않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쉽게 변화해 버리는 것 따위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말자.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뭐지?'


어제의 글에서도 언급했듯 글쓰기는 부서질 결과를 알면서 모래성을 짓는 과정이라 쓰지 않았던가. 제법 똑똑해졌다 생각했건만, 여전히 내 행동은 과거의 모습을 닮아있다.


[글쓰기의 무용함]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글을 쓰며 얻는 장점이 고작 19금 콘텐츠를 구하는 것에 비견될 만큼 허접하다는 의미로 쓴 얘기가 아님을 이해해 주시길.


단지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 감정 중 일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AI가 발전하며 창작자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이 시점에.. 글을 쓴다고?'

'이미 자리 잡고 선점한 이들이 포화상태에 이른 레드오션으로 뛰어든다니 제정신인가?'

'넌 당장 [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일 텐데, 너무 삶에 대해 방임하는 거 아닌가?'


아내도 한마디를 보탰다.


"오빠는 언제까지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아?"

"계.. 계속?"


아내의 눈에서 살기까진 아니지만 한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만약 내가 지금 49금의 벽을 넘으려 한다면 어떨까?'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스스로에게 금제를 내려보는 건 어떨까? 49금이 존재한다면 내가 뛰어넘고 싶은 [제약사항]이 분명 있지 않겠어?'


19세를 통과한 순간 사회의 제약이 한순간에 무용해졌듯, 이후부터 내게 제제를 가한 건 법과 윤리 정도 외엔 없었다. 오랫동안 제약 없이 편하게 산 셈이다.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고 벽을 뛰어넘도록 상황설정을 해보면 어떠려나. [자기 최면]의 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인 제약사항은 선정하지 못했다. 세상은 40대의 남자에게 관심과 시간을 할애할 만큼 자애롭지 않다. 하다못해 [민방위]도 끝났으니 합법적으로 "당신은 더 이상 청년이 아님‼️"이라고 못 박혔다.


스스로가 관심과 애정을 쏟지 않는다면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나이가 어느새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로 오늘부터 나를 위한 [49금]을 걸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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