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걸음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보면 가끔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와 같이 지하실(?)에 위치해 있는 비인기 작가의 하루 평균 조회수는 보잘것없는 편인데, 어떤 이유에선가 평소의 조회수를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글이 나타날 때가 종종 있다.
'어디에 노출이 되긴 한 거 같은데?'
도통 그 경로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조회수의 늘어남이 직접적으로 와닿는 건 없다. 어지간해선 댓글이 달리지 않다 보니 보통 조회수 증가에서 그치고 만달까. 그래도 기분이 살짝 좋아지긴 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어요‼️'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났더니 소소하게 조회수가 늘어나 있었어요!'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지도.
비록 상호 간의 피드백이 오고 가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선] 내 글도 읽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보통 어떤 글이 오늘처럼 [반응]이 있었을까?
딱히 정해진 규칙이나 주제가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래도 하나 어림잡아보면 [망상]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뤘을 때 좀 더 조회수에 도움이 됐던 거 같긴 하다. 아무래도 우리는 꿈속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아내고 살아가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혼자만의 세상이 아닌 공유할 수 있고 반응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까.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글을 써야 할 방향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이야기를 써내야 해.'
그렇지만 매 순간 현실 얘기만 쓰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성향 탓인데, 현실 세계보다 망상을 펼쳐낼 때 좀 더 재미있어서이다. 물론 순전히 내 만족이긴 하다. 아직까지 큰 공감을 사기 어려운 만큼 내게 갇힌 생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를 쓰는 건 여러모로 [리스크]가 존재한다. 뭐 현실 세계에서 생기는 위험도에 비하면 이 정도를 과연 리스크라 칭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리스크라고 여기는 이유가 뭐죠?
명색이 상업작가를 표방한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하는 법. 즉, 대중에게 먹혀서 당장에라도 돈이 될 수 있을만한 글을 써내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라 이 말씀. 내게 예술가로서의 곤조(?)가 있어서 현재 색을 유지하려 하는 것도 아닌 이상, 시장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만 고집하며 쓴다는 것은 바로 시장의 질서에 반하는 일. 점점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볼 수 있는 행동이다.
백수라고 떠드는 사람으로서 과연 언제까지 돈을 무시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내가 [돈, 돈] 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머리와 몸이 일치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말 외엔 조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니야? 오늘은 조회수도 증가해서 기쁜 마음에 글을 쓰려했던 거뿐인데.'
맞다 맞아. 아예 읽히지도 노출되지도 않는 글만 쓰고 있지는 않는다 생각하니 그건 그거대로 축하할 일이지.
하지만 스스로에게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 건, 오랜 교육의 탓인가, 아니면 내 몸 어딘가에 각인된 DNA의 영향인가, 마냥 축하할 수도 없는 것 또한 내 모습 중의 하나다.
'내게도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게 있을까?'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매번 답이 달라진다. 이번엔 과연 어떤 답을 하게 될까. 오늘의 기분과 감정은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하려나.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읽히는 글. 한 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약간은 흠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글. 그 정도면 좋겠다.]
진심으로 궁금할 때가 많다.
'내가 쓰는 글을 읽는 누군가는 어떤 마음으로 읽고 있을까?'
정말로 궁금하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알면 또 어쩌려고?' 싶기도 하다. 그저 쓰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으로 회귀한다. 어차피 답이 나오지 않을 질문이라면, 하던 일이라도 하는 게 낫지 싶은 마음이다.
얼마 전에 들은 말이 있다.
"아니 그렇게 웅크리고 틀어박혀 있으면 누가 알아준답디까? 소통도 하고! 공유도 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야 성과도 생기지. 어찌 젊은 사람이 쯧쯧......"
"......"
오랜만에 팩트로 뼈를 맞아 보니 꽤 아팠다. 마음속 한편에 '쓰다 보면 알아봐 주는 이가 생길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스스로 범부라 칭하면서, 사실은 바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글이 되길 바랐던 게 아닐까. 너무도 자신을 올려치기 했다. 말로만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 고로 나를 때린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으리라. 참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좀 더 [행동]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취미로 끝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스스로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는 진실이 변할리는 없을 게 분명하다.
잠시 샛길로 빠져보자면,
"오늘 기분이 좋습니다."
-왜요?
"오랜만에 집이 아닌 카페에서 글을 써서요."
-백수님께서 잔고를 좀 더 빨리 소진시키는 데 취미가 생기셨을 줄이야.
"...(뜨끔) 오늘은 제가 돈 쓰러 가자한 게 아니라 아내가 가자고 했으니까요. 제 탓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부부가 쌍으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햇살이 창틈으로 기분 좋게 내리쬐어 아름다운 문양을 바닥에 만들어 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나와서 글을 쓰니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 내게는 중요치 않으나 대다수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겐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한 주말 아닌가. 그런 밝은 기운이 내게도 노출되는 이 기분.
'너무 상쾌해.'
-저기... 흥을 깨려는 건 아닌데 지금 뭐 하자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가거든요. 맥락이 없어도 유분수지.
언제는 맥락이 있었나. 그냥 기분대로 쓰기 바빴는데. 문득 카페 한편에 놓여 있는 블랙&화이트 톤의 소화기가 눈에 띈다.
일반적인 소화기가 촌스러운 레드에 가까웠다면, 카페에 있는 소화기는 모던함 그 자체. 그렇다고 기능의 차별성은 없다. 화재 발생 시 진압하는 용도는 둘 다 동일한 까닭이다.
글도 마찬가지 아닌가?
같은 내용의 글이더라도 결국 어떠한 포장을 했는지에 따라 보이는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닐까?
기왕이면 촌레드가 아닌 모던함이 보기에 좋더라.
성경의 창세기장 1장을 보다 보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 꽤 나온다. 오래된 역사만큼 올드해 보일 것만 같은 신조차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마당에, 감히 인간인 내가 거스를 필요가 있을까?
그런 고로 보기에도 좋고 읽기에도 좋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이쯤에서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