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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26. 2024

목감기로 시작하는 하루

170 걸음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잠겼다. 어제저녁부터 기침이 나고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 또 목감기에 걸렸나?' 싶긴 했다. 목감기에 걸리면 목에 낀 가래도 문제지만 동반되는 두통과 코막힘이 더 성가시다. 올해만 해도 목감기에 몇 번이나 걸리는 건지.


"oo야 자니?"

"..."

"자?"

"아 왜!"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목감기는 그냥 넘기기엔 아까운 기회다.


"미안한데.."

"미안한 얘기면 할 생각도 하지 마."

"정말 미안한데..."

"뭔데?"

"오늘 내가 아침 당번이잖아? 부탁 좀 해도 될까?"

"....... 휴우"


정적 뒤에 들려오는 깊은 한숨소리는 어쩔 수 없는 수락에 가깝겠지.


"핑계도 좋아. 목 아픈 거랑 아침 차리는 거랑 뭔 상관이래?"


실제로도 목소리가 잘 안 나오긴 했지만 좀 더 연기를 보태서 잘 들리지 않게 속닥거림으로 답을 했다.


"고오오오오마아아아워어어어."


덕분에 10분 정도 잠을 더 잘 수 있었다. 아침잠 10분의 달콤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때의 내 기분을 이해하리라.




아침은 단순했다. 사실 내가 차려도 늘 간단식이다. 잘 풀어진 계란물에 덥힌 밥과 참치를 넣어 잘 버무린 후, 달궈진 프라이팬에 전 모양으로 올리면 끝. 일명 [밥전]이라 불리는 음식이 오늘 아침밥이다. 


내 경우엔 아내와 결혼 후 처음 맛봤던 음식이었는데 생각보다 꽤나 맛있었다. 노릇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밥전에 케첩을 살짝 찍어 먹으면 나름 조화롭기까지 하다. 여기에 추가로 (아내는 싫어하지만) 참치를 넣어 만들어주면 아이도 잘 먹는다.


만약 내가 오늘 아침을 차린다 했으면 뭘 만들었으려나?


어제는 구운 식빵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줬었고, 그저께는.. 흠..??? 기억이 안 난다. 불과 이틀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다니. 그렇다고 아침 식사 만드는 걸 기록으로 남기는 건 굳이 안 해봐도 될 거 같은데.


요즘은 며칠 전 기억쯤은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게 다반사다. 정말로 인상 깊었던 일이 아닌 이상 아침밥을 만드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은 기억 대상 후보에도 못 오른다.




가끔씩 기록으로 남겼던 글이나 영상을 살펴볼 때면 잊고 지내던 그날이 떠오른다. 전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느낌으로 하루를 보냈는지까지 세세하게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순간의 감흥 정도는 떠오른다.


'이날은 나름 바쁘게 살았던 거 같아.'라거나

'이때 가족이 다 같이 놀러 갔다가 고생만 하다 왔었지.'였던 적도 있고

'맞아. 이날 많이 아파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질 않았었어.'일 때도 있었다.


그나마 기록으로 남겨놓은 덕에 약간의 과거를 떠올려 볼 수 있기라도 했다. 그래봤자 일 년 안팎의 기억일 뿐이니 아주 먼 과거의 기억까지는 아니다. 굳이 따져보면 한 달 전도 그리 먼 과거는 아닌데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굉장히 오래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정말 눈만 감았다 떴을 뿐인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매일을 기록하고 담아두려 노력하건만 그런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모든 일상을 담을 순 없다. 매번 느끼지만 글도 결국엔 [편집]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짧은 릴스를 만들 때도 그렇지만 찍어 놨던 영상 중 남는 건 1/10 수준이다. 대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느껴져 날려버리기 일쑤다. 예를 들어 총 재생 시간이 15분 이상이라 쳤을 때 최종적으로 남겨지는 부분은 30초도 채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짧게는 10초 미만이 될 때도 많다.


마찬가지로 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쓸 때는 이것저것 길게 잔뜩 쓰려하는데 막상 쓰다 보면 지우고 다시 쓰고의 반복이다. 어떤 때엔 길게 썼다가도 이어서 쓰려는 내용과 맞지 않아 보여 통으로 지우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엔 대충 아이디어 스케치하듯 썼던 문장을 이어서 쭉 하나의 글을 써내기도 한다.


무엇이 정답에 가깝고 멀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쓰는 당시의 난 써가면서 즉흥적일 수밖에 없는 검열 기준으로 내 글을 실시간으로 재단한다. 그리고 그렇게 2-3천 자 내외의 글을 쓰고 나면 '이 정도면 오늘 올릴 정도의 글은 된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목 아플 때 챙겨 먹으라며 아내가 타준 생강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따뜻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미지근함을 넘어 살짝 차가워졌다. 그래도 한 모금을 마신다. 어쩌면 내가 마시는 건 아내의 따뜻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낯간지러운 말은 이쯤 하고, 오늘도 날이 밝았으니 하루의 일과를 할 시간이 되었다. 딱히 특별한 계획이 존재하진 않지만, 누워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싶진 않다. 목감기 핑계를 대며 게으른 아침을 보내긴 했지만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


아참 어제 약속한 것처럼 [필사]를 진행했다. 노트북의 키보드로 다닥다닥 쳐내리다 보니 생각보다 손가락이 아프긴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용으로 글을 쓸 때는 괜찮았던 손가락이 강제로 타이핑을 칠 때는 무겁고 아프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주언진 분량을 다 쳤을 때의 쾌감이 있었다. 특별히 머릿속에 인상적으로 남는 문구가 존재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5천 자 이상의 타이핑이 주는 리듬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글을 마무리 짓고 크게 할 일도 없으니 잠시 휴식 후 필사를 해야겠다. 그렇게 몇 수 앞이 아닌 바로 뒤에 이어질 일만을 떠올리며 해나가다 보면 분명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안온하게 흘러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게 필요한 건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약간의 증거와 증명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의 글 또한 이런 증거와 증명으로서의 효력을 발휘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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