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걸음
다른 가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많이 투닥거린다. 독자로 자라온 나로선 형제간의 갈등을 100% 이해하지는 못하나, 분명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마음은 편하다.
"아! 뭐야? 나 짱구 보고 싶다니까?"
"싫어! 왜 형 마음대론대? 난 베이블레이드 볼 거야!"
톤이 높은 짜증 내는 목소리는 곁에서 듣는 이들의 신경까지 날카롭게 만든다. 예전엔 이런 갈등 상황에 빨리 개입해 종결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균형은 깨졌고, 표현되지 않은 불만은 깊숙이 배려받지 못한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언젠가의 갈등 상황이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숨겨진 불만과 함께 몇 배로 표출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관만 할 수도 없고.'
여하튼 양육이라는 게 단순히 자란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법은 아닌 거 같다. 오히려 말을 못 했을 때가 어떤 면에서는 편했던 거 같기도 하달까. 그래도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으니, 좀 더 나은 해결책을 고민해내야 한다.
주로 큰 아이의 편을 들어주는 선택을 했다. 작은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본인의 드센 성격(?) 탓이다. 대부분 져주는 성격의 형을 볼 때마다 짠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단순한 [장남사랑]이라고 치부하기엔, '아니지... 이렇게 장남에 대해 편애가 시작되는가?'.
둘째의 기분도 고려해야 한다. 매번 부모가 개입해서는, "이번엔 네가 형 말을 들어야 해!" 라거나 "계속 지켜보니 네가 맨날 우겼잖아."라는 식의 말을 했으니, 본인으로서도 억울했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엄마 아빠는 형아 편이잖아?'라는 식으로 생각이 변해버리는 것만큼은 막아야 될 일.
중간에서 편애하지 않으며 갈등을 해결하는 스킬이 필요한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나중에 성인이 돼서 지금의 일을 형제는 어떻게 기억하려나? 그때는 지금처럼 다투지 않고 우애 좋게 지내려나?'
현재의 일도 잘 해결하지 못하면서, 미래가 희망적일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건지. 부모 된 자로서의 개인적인 바람이라 해두자.
"꺄하하하하하‼"
언제 싸웠었냐는 듯 둘 사이가 화기애애해졌다.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이혼한 가정은 물이 아닌 다른 것을 베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너(오빠)도 조심해! 언제까지 물을 벨 거라는 생각 따윈 집어넣으라고."
큰일 날뻔했다. 나도 위험한데 누가 누굴 걱정하려 했단 말인가.
"착해 보이고 싶었겠지."
"......"
여하튼 형제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갑자기 얼굴도 쓰다듬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킥킥거리며 웃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럴 때마다 부모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곤 한다.
그래도 됐다. 차라리 즐거운 게 다투는 것보단 훨씬 낫다. 어느새 험악했던 집안 분위기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부모 된 특권]이 아닌가 싶다. 물론 특권을 남용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醜虎)도 없다.
-잠깐.. STOP‼️ 醜虎? 못생긴 호랑이라고요? 내가 이래 봬도 한자를 좀 아는 편인데 어디서 밑장을-
역시 내 글을 읽는 독자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밖엔 b. 사실 한자어를 잘 모르다 보니 여기저기서 베껴왔을 뿐인데 단번에 맞추시다니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릴 수밖에.
-...... 어쩐지 조롱당하는 느낌인데.
秋毫(가을 추, 터럭 호)
: 가을의 털
대체 무슨 소리지? 옆길로 잠시 새어 보겠다. 옛 조상들께서는 가을에 털갈이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하시어, 새로 자라나는 털이 매우 가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지요. 그리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추호]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 위에 언급한 못생긴 호랑이를 의미하는 醜虎는 잘못된 표현.
[출처] https://www.ytn.co.kr/_ln/0485_201611070558454078
매 순간 아이보다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든 우리는 동등한 관계이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맘과 달리 고성이 오가는 일은 흔하게 생기는 편이다......
아비로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부디 형제로서의 연을 소중히 여기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부분은 나의 의지와 무관히 흘러가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오랜 세월 부모 못지않게 서로의 장단점을 여과 없이 보며 자라는 사이라니, 독자(獨子)로 자라온 나로선 질투가 나기도 한다.
-형제에게는 형제만의 고통이 있는 법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질투할 필요는 없겠죠?
독자(讀者)의 충고도 달게 받아들이겠다.
미처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제가(齊家)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 중이다.
-아니...... 오늘 뭐 한자 공부라도 좀 하셨나? 왜 이리 한자어만 써대는지. 좋은 순우리말 냅두고 정말.
그냥 말을 좀 줄여 쓰고 싶었던 화자의 욕심을 너그러이 봐주시기를. 공자 선생님은 실로 인간사를 꿰뚫어 보시는 성인이 맞으신지, 어쩜 이렇게 삶의 중요한 길목마다 딱 맞아떨어지는 공식 같은 글을 만들어 내셨을까.
'집안이 가지런하려면 가족구성원의 상태부터 안정화되어야 하는 것이구나.'
부모인 우리의 다툼이 집안에 공포를 불러오듯, 형제의 다툼 또한 불란의 기운을 불러온다. 부모가 평화롭고, 형제가 평화로우니 이보다 더 화목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인 이상, 다툼과 갈등은 동반되겠지만, 마무리만큼은 파국이 아닌 사랑으로 귀결되기를 희망한다.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