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더 이상 혼자 살기 싫은 송정희 씨 8

by 고성프리맨

“잘 구워졌죠?”

”와! 너무 맛있겠는데요.”

”맛있게 먹어요.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해요.”

”같이 먹어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양갈비는 부드럽게 뜯어져 입안에서 감칠맛이 느껴진다. 잡내도 안 느껴지고 적당한 굽기라 먹기에도 편하다.


”제가 평상시 양갈비에 즐겨 먹는 고량주가 있는데 한번 맛봐볼래요?”

”고량주요? 너무 독한 술 아니에요?”

”독하긴 하죠. 근데 제가 먹는 방법이 있는데 고기의 풍미도 살리고 다음날 숙취도 없어서 전 즐겨 마셔요. 스페셜한 손님한테만 대접하는 술인데 안땡겨요?”

”흐음. 나를 술취하게 하고 뭘 하려고..!”

”뭔 소리예요! 안 줄래요.”

”아니에요. 한 잔 주세요. 믿고 마실게요. 사실 저 술을 잘 몰라요. 고량주는 마셔본 적도 없어서. 그냥 독하다고만 알고 있기도 하고.”

”알겠어요. 잠시만요.”


인호 씨가 술 진열장으로 이동하더니 투명한 병에 담긴 술을 챙긴다. 그리고 주방 냉장고로 들어가더니 얼음을 물병에 가득 담아서 가져온다.


”자 준비 되었나요. 이 술은 ‘금문고량주’라고 하는 술인데 대만 여행 가서 처음 마셔보고 완전 반했어요. 그때 같이 놀러 갔던 지인 중에 고량주를 언더락처럼 희석해서 먹는 법을 알려줬는데 이것도 맛이 정말 좋더라고요. 특히 정희 씨는 고량주가 처음 이랬으니 너무 높은 도수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말을 끝마친 인호 씨는 물병 가득히 고량주를 붓는다.


”얼음이 좀 녹을 때까지 좀만 기다리면 돼요.”

”너무 행복해 보이네요. 주정뱅이 씨!”

”아니.. 주정뱅이는 아닌데. 그래도 전 음식과 어울리는 술 마시는 걸 정말 좋아해요. 이 즐거움을 정희 씨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 나오는 그의 모습에 나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그의 음식론을 듣다 보니 참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싶다.


”자! 이제 마셔도 될 거 같네요. 한번 마셔봐요.”

”그냥 마시면 돼요?”

”네. 한 번에 마시지 말고 그냥 칵테일 즐기듯이 천천히 고기하고 즐기시면 괜찮을 거예요.”


첫 고량주라 잔뜩 긴장하며 한 모금 마셨다. 입안 가득히 차가운 기운과 은은한 향이 퍼지며 고기로 살짝 기름진 속이 싹 씻겨내지는 느낌이 너무 좋다.


”와! 이런 술이었어요? 난 이런 거 모르고 살았는데 대박. 이거 가게에서도 파는 메뉴예요?”

”아니요. 보통 고량주를 희석해서 먹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그냥 제가 가끔씩 즐기는 정도예요. 너무 취하지 않으면서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덕분에 좋은 거 많이 먹어보네요. 전 인호 씨처럼 뭔가 음식 취향이 강하지 않아서 아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

”다이어트하느라 맛에 대해 많이 잃어버렸을 수도 있죠. 제가 맛있는 거 많이 챙겨줄 테니 걱정 말아요.” ”왜요?”

”네?”


화들짝 놀라는 인호 씨의 모습을 보는 게 재밌다.


”정희 씨는 놀리는 거 참 좋아하는구나.”

”그냥 인호 씨가 너무 잘 놀라서요. 근데 조금 궁금해서요. 아직 우리 두 번 밖에 안 봤는데 너무 잘해주니까요.”

”나도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눈길이 갔어요. 그러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지금은 그런 느낌을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근데 자꾸 잘해주면 나 같은 사람은 오해한단 말이에요. 이젠 누구 만나는 게 쉬운 나이도 아니고. 아무튼 저도 신기해서 그랬어요.”

”하나 고백할 게 있긴 해요.”


불안했던 마음이 커져간다.


’설마 유부남?’


”유부남이죠?”

”아니에요! 제가 그런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니면 아닌 거죠. 미안해요.”

”아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유부남이었어요. 오늘 이런 얘기를 꺼내려던 건 아니었는데 정희 씨한테 솔직해지고 싶어 졌어요.”

”돌싱이 뭐 어때서요. 내 친구 중에도 있어요. 솔직히 인호 씨가 너무 자상하길래 유부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수작 부리는 거면 아주 아작을 내주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아작이라니..”

”난 그런 건 크게 상관 안 해요. 돌싱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닐 거잖아요.”

”네.. 근데 얘기 꺼내면서도 좀 불안하긴 했어요. 갑자기 정희 씨가 날 어떻게 볼까 싶기도 하고.”

”뭐 마냥 좋지는 않죠. 난 엄연히 싱글인데. 근데 우리가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제 과거가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닌 거죠?”

”네 딱히. 근데 만약 사귀게 된다면 제가 좀 억울하긴 하겠죠?”

”하하. 그렇겠죠? 고기 다 식겠어요. 맛있을 때 더 먹어요.”


고기의 맛이 아까보다 덜하다. 인호 씨의 정체를 알고 나니 내 마음도 짜게 식은 걸까? 괜히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불안함의 원인을 알고 나니 조금 후련해졌다. 씁쓸한 마음에 술을 한 모금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