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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라서 하기 힘든 말

5

by 고성프리맨

"가끔 생각하는데 나 진짜 인간미가 없는 거 같아."

"어째서?"


무거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한번 짚고 넘어가 보고 싶은 게 있다.




[몇 달 전]


"오빠.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대. 이제 진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나 봐."

"......"

"짜증 나. 엄마랑 이모만 맨날 병간호하고. 삼촌들은 아무도 안 해. 왜 엄마랑 이모가 다해야 해?"

"......"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내의 외할머니를 몇 번 뵙지 못했지만 웃으며 맞이해 주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결혼 이후 아내는 외가를 거의 방문하지 못했다. 이유라면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맞벌이, 거리, 시간.


수많은 핑계를 모아 모아 갖다 붙이면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내 심연 안에는 귀찮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제]


"할머니 의식이 없으시대. 진짜로 이젠 맘의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아. 어떻게 삼일장 기간 동안 같이할 거야?"

"......"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나 좀 서운하네? 오빠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기억해? 그때 끝까지 함께했잖아."

"그건..."


뒷말을 이으려다 핑계임을 직감해 말을 멈췄다.


"아니야. 어차피 아이들 때문에라도 오빠랑 애들은 먼저 올라가 있으라고 하려고 했어. 대신 하루는 있다가 가. 그래도 그렇지. 말뿐이더라도 좀 나한테 맞춰서 얘기해 주면 안 돼?"

"미안해. 그런데 사실 있잖아..."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있잖아...'의 이후에 해당하는 얘기가 되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근무 중에 들었다. 통화가 끝난 뒤 내 상태는 "......"에 가까웠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준비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이전에도 위독하다는 얘기 이후 다시 괜찮아지셨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위독을 넘어서자 더 이상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이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회사에 통보 후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돌아가셨구나.'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왔고, 몇 차례의 대수술로 연명해 오던 생의 끈을 놓고 마침내 떠나신 것이다.

이런저런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영안실에 도착했다.


"고인에게 하실 말이 있거나 인사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세요. 스킨십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은 낯설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낯섦의 이명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더 이상 누워 있는 육체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은 탓에 차마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몸에 손을 댈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혹시라도 만지면 악운이 껴들 것만 같았다. 비겁했다고 밖엔 설명을 못하겠다.

.

.

.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한창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잠시 나를 불러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역할을 하며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와의 이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자세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어렴풋하게나마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할머니를 향해 마지막 절을 올리는 내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슬프지가 않지?'


억지로 눈물이라도 쥐어 짜내려 해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

.

.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할 때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이 당시엔 이미 강원도 고성에 자리 잡고 살아가던 시기였다. 할머니의 거처는 이모가 거주 중인 자은도라는 섬이었다. 이미 이전부터 병세가 좋지 않아 일찍이 요양원 생활 중이셨으니 정확하게는 목포에서 지내셨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일단은 거리도 거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만나지 못(안) 한 이유(핑계)는 충분했다.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내 속에선 '귀찮아...'라는 감정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왜 하필 지금일까? 운전도 미숙하고 생계 고민 때문에 머리도 터질 것만 같은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화들짝 놀랐다. 아니 놀란 척을 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지금까지 배워온 도덕과 윤리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니가 그래선 안 되는 거야!'라고 질책했다.




"그래서 내가 인간미가 없는 게 아닌가 싶어."


내 말을 곰곰이 듣던 아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잠시 멈춰놨던 유튜브 채널의 재생 버튼을 클릭해 정적을 깨려 할 즈음 입을 열였다.


"나도 그래."

"무슨 얘기야?"

"나도 그런 마음이 있다고. 저번에 친구 아버님 돌아가셨다고 할 때도 갈까 말까 엄청 망설였던 거 알지?"

"응."

"그때 오빠가 가라고 했잖아. 사실 나도 늘 고민이 된다고."

"굳이 애써가며 나한테 맞춰줄 필요는 없어."

"그런 거 아니야."


우리는 잠시 동안 정적을 유지하다 멈춰놨던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했다.

그렇게 몇십 분 동안 멍하니 화면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는 척했다.


"미안해. 내가 좀 너무했지?"


침묵을 깨기로 마음먹었다.


"어."


기다렸다는 듯 아내가 답했다.


"외할머니가 혹시라도 떠나시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 좀 더 적극적으로 향후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밝은 이야기를 주제 삼아 나누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 1을 올릴 수 있던 시간이었으리라.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비겁한 남편이라 미안해.'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을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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