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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공유가 되는 건 좋지만, 좋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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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취미생활 중 하나는 애니 감상이다.

아마도 초딩 시절부터 즐겨보던 만화책과 만화영화 덕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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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애...(잠깐만!)"

"??"

"독서요."

"오와. 멋져요."


선뜻 애니 보는 게 취미라고 말을 못 꺼냈다. 꺼내려다가 나도 모르게 멈칫해 버렸다.

뭐? 왜? 부끄러워서?

아니라고는 차마 못하겠다.


아마도 시선 때문일듯하다. 하고 많은 콘텐츠 중에 왜 하필 애니를 보냐며 그것도 40대에 들어선 아조씨가 말이지라는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웠달까.


-굳이 그렇게 감추면서까지 취미 생활을 할 필요가 있나요?


원래 스릴은 드러내지 않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최대치의 도파민을 뿜어내는 법.

솔직히 애니 보는 게 나쁜 일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없는 건데, "내가 왜 숨기려 하고 있지?".




요즘 재미있게 보는 애니가 하나 생겼다.


마슐


바로 이것이다.


https://youtu.be/yoT9WdGI1-8?si=EkP9pQ-9TpbisVl4

브링방봉브링방봉


중독성 있는 2기 오프닝 송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한동안 챌린지화 되기도 했었다.)


내가 해리포터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얕게 훑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다른 느낌의 도파민이 생성되는 애니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근력 운동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는 마슈 반데드의 매력이란)


그렇다. 오늘 글은 사실 마슐을 재밌게 보고 감명받아서 쓰는 글이다.

그렇다 해서 마슐에 대한 스토리 라인을 뻔하게 쓸 생각은 전혀 없으니 이쯤 해두도록 하자.


-딱히 스토리 언급도 하지 않았잖아요‼️


자세한 내용은 애니를 보시면 이해할 수 있다.




보통 재미있는 애니를 발견하면 아내와 같이 보는 편이다. 결혼 전엔 몰랐는데 아내 또한 애니를 생각보다 좋아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 앞에선 주춤거리며 꺼내기 힘들었던 애니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중독돼서 한번 시작한 애니는 출시된 회차까지 연달아 봐야만 직성이 풀려한다.


"안돼! 같이 보기로 했잖아!"

"나 혼자 먼저 볼 테니 나중에 보면 안 돼?"

"어 안돼. 그럼 흥이 깨진다고. 자고로 소중한 건 아껴가면서 봐야지."

"아니야. 한 번에 후딱 해치워 버려야 해."


같이 감상하는 것까진 좋은데 감상의 주요 포인트가 나랑은 정반대다.

내가 걱정하는 건 볼만한 애니를 다시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까 봐 두려워하는 점이다.

반대로 아내는 "빨리 봐야 다음에 볼 애니를 찾지!"에 가깝다.


누구의 말이 정답이고 아니고를 따질 필요조차 없는 하찮은 논쟁거리지만, 우리에겐 꽤나 중요한 사안이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 시간에 애니를 차분히 감상하고 싶은 내 마음을 제발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한화를 보더라도 집중해서 보고 싶단 말이야.'




-혹시 라프텔도 구독하셨어요?


미안하지만 본좌가 그 정도로 헤비 하게 보는 편은 아니라서... 사실 지금 구독 중인 넷플릭스 만으로도 충분히 내게 맞는 수준의 양질 애니를 간간히 찾아서 볼 순 있다. 단지 볼만한 콘텐츠를 찾아내는 주기가 다소 길어진다는 점만큼은 어쩔 수 없다.


내게 있어 볼만한 애니의 기준은 뭘까?

일단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가까워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와 관련된 키워드를 한번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다크한 #호러 #액션 #잔인성 #괴수 #히어로 #신선함 #성장물 #인자강(인간자체가 강하다) #먼치킨 #약간의유머


너무 진지하고 칙칙하면서 심장이 옥죌 듯한 다크함을 선호하진 않는다. 뭐든지 적당량이 중요하다. 음식도 마찬가지지 않나. 간이 중요하다 이 말이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볼만한 애니를 발견하게 되는 날엔 상당히 기쁜 마음이 되곤 한다.


'한동안 재밌게 보겠어.'


그리고 갈등한다. 아내에게 같이 보자고 권할지 말지에 대해서 말이다.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내의 몰아보기에 대한 성정을 아는 관계로 고민이 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에잇 몰라. 결심했어!'


"내가 관심 있는 애니 하나 발견했는데 함께 봐볼래?"

"좋아!"


보통은 흔쾌히 허락하는 편이다. 정말로 취향에 맞지 않는 애니가 아닌 이상 거절이란 없다.

그렇게 같이 집중해서 깔깔거리며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취미 생활을 공유한다는 즐거움이 행복함을 배가시켰다.


"하암... 나머지는 내일 볼까?"


시간도 12시가 되어가고 있는 데다 이젠 잠을 좀 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 편만 더 보자! 몰아쳐서 봐야 해."

"너무 졸린데."

"그럼 나 혼자 먼저 봐도 돼?"

"그건 선 넘었지! 같이 보기로 했잖아."

"아 몰라. 여기서 끊기면 안 된단 말이야."


한참 동안 아내를 어르고 달래 침대로 들게 만들었다. 정말로 진이 다 빠졌다.


"아... 아쉬운데. 뒷얘기가 궁금하단 말이야."


'내 글도 좀 그런 마음으로 읽어주면 안 될까?'라는 말이 목구멍과 입술 사이에서 간질거렸지만 참아냈다.


내 이야기가 그 정도로 재미를 못 끄는 걸 어쩐단 말인가. 슬프지만 감내해야지.


"내일 같이 보자고. 알았지? 먼저 보는 건 안돼."

"휴. 알았어. 잘 자."


드디어 안심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애니와 함께한 긴 연휴도 끝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아니지 오늘 밤부터는 마슐 2기 정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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