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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많이 길어졌지?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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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아... 너무 피곤한데?'


어제도 장거리 운전을 다녀와선지 피로가 누적됐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나름의 일이 쌓여 있었다.

사실 아내를 보조하며 미약한 도움을 준 게 전부였다.


"대체... 이렇게 힘든 청소일을 어떻게 혼자서..."

"너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다! 진작부터 도왔어야지."


그러게. 진작부터 좀 도울걸. 전에도 몇 번 아내의 청소 특강이 이어진 적이 있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올해엔 조금 더 도움 되는 남편으로 거듭나기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왕 시작한 거 잘 보좌해 드리자.


이 외에 백수지만 이런 내게 맡겨진 소소한 일거리도 몇 개 있다.


자잘하지만 체험단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고용주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 가끔씩 주어진다.


-뭐 체험단 해서 돈벌이나 돼요?


솔직히 말한다면 '큰 돈벌이는 되지 않아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포인트 형태로 적립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현금화할 수 있는 거니 형태가 다른 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아내의 도움 없이 유일하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 중 하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들어온 일감은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내 도움이 없다고? 진짜로?"


아예 없지는 않지. 아내가 예약도 잡고, 결제도 하고 요청사항에 대한 질의도 해서 알려주니 큰 도움이 되긴 한다. 내가 하는 주된 일은 운전콘텐츠 작성이다.


'여하튼 맡겨진 일은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니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




가끔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


"체험단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나도 하고 싶은데."


보통은 체험단 활동과 관련된 정보가 올라가 있는 서비스와 카페 등을 활용한다.

가끔은 감사하게도 직접 DM으로 체험단을 제공해 주겠다고 연락 주는 분도 계시다. (아직까지 이런 경우엔 민망해서 인사만 드리고 기회 되면 #내돈내산 으로 방문드리려 한다.)


당연하겠지만 처음부터 경력 있는 신입이 될 수는 없으니, 활동하는 SNS 상에 어느 정도 콘텐츠를 쌓아놔야 한다. Followers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그리고 어느 정도 "해볼 만해!"라는 판단이 든다면(이건 순전히 개인의 감에 의존한다) 그때부터 사이트에 올라온 체험단에 응모하면 된다.


다음으로는...


https://blog.naver.com/homezet/222944232336


신께 비는 수밖에... 아니지 올리신 광고주에게 빌어야 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한 번만 체험하게 해줍쇼.'


-구걸 아잉교?


"......"


빌어먹더라도 당당하게 빌어먹는 태도. 아니지 아니야. 체험단이라 함은 제공받은 서비스를 취하는 대신 #홍보 를 해줘야 하는 법. 둘 사이의 거래가 #등가교환 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체험단이 생길 리가 없잖은가.


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나와 달리 아내는 땀 흘린 만큼 버는 길을 택했다.

애초에 책정된 금액이 있는 일을 수주한다.

물론 대부분의 일은 청소의 형태로 직결한다.


"내가 청소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남편 복도 드럽게 없지."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월 50만 원만 벌어라 닝겐."

"......"

"뭐? 이것도 싫다고?"

"아니, 해보겠다고. 그런데 말이지... 나는 다른 방식으로 땀 흘리며 이윤을 남기는 게 목표라서..."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고!"


이런 반응엔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초창기엔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던 것도 같다.


"아니 더울 때 에어컨 쐬면서 편하게 일하고, 추울 때 히터 쐬면서 키보드만 딸깍 거리는 주제에 너무 쉽게 돈 버는 거 아니야?"

'(아님)'


무형의 자산, 정신 노동자를 지금 무시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내가 처음 속해 있던 조직은 전도유망한 회사가 아니어서였는지, 일하는 시간 대비 월급이 형편없었다. 아마도 최저시급 기준으로 나누기를 했다면 일할 맛이 나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제겐 꿈이 있었죠! 아직은 배워야 할 때라는 점. 언젠가는 높이 날으리~"

-곱게 미쳐야 할 텐데...


"그러니까 지금 내가 옛날 악덕 고용주랑 매한가지다 이 말임?"

"그런 말은 아니고, 그러니까, 그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손에서는 휴대전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이유인즉슨, 체험단 신청할 걸 열심히 탐색 중이라서다.


"어휴 일을 그렇게 했어봐."

"어허. 이것도 일의 한 종류인 것을."


물론 직접적으로 가계의 숫자에 보탬이 되는 일은 아니다.


"본인 즐거우려고 하는 거잖아. 진짜 오빠는 나 안 만났으면 큰일 났어. 내덕에 자유롭게 희희낙락하며 사는 거라고."

"고맙소이다."

"......"


진심으로 고마워서 고맙다고 답을 하자 아내는 말문이 막혔다.


그나저나 올해는 정말 "나도 가계에 보탬이 좀 돼야 할 텐데."라며 새삼스러운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돈 되는 일은 하고, 안 되는 일은 접엇!"


그렇다면 지금 내가 쓰는 글부터 접으란 소리인가. 하지만 이건 그냥 이대로 흘러가도록 놔두고 싶은 취미이자 자의식 과잉에 대한 기록인데. 생산성을 떠나서 이건 그냥 유지하면 안 될까?


"누가 쓰지 마래? 하루 종일 쓰는 것도 아니잖아. 이젠 좀 뭐라도 할 때 된 거 아니야? 내가 비교를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비교로군.


"내가 갑갑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갑갑해서로군.


"내가-"


oo해서로군.


"죽을래?"


아... 백수가 정말 체질에 잘 맞는데. 위기로구나.

그래. 아직 아이들 크려면 한참 남기도 했고 생활엔 돈이 필요한 법이지.

이제는 정말 돈이 될만한 일도 좀 하자고.


"그러려면 뭘 해야 할까요?"


-아니 그걸 누구한테 물어?


여하튼 올해는 좀 눈치가 보인다.

아마도 아내는 언젠가 이 글을 읽을 것이고, 부디 내가 일말의 양심 정도는 있는 백수라는 것 정도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인데.


기왕이면 올해가 마무리되기 전에 백수 대신 다른 타이틀을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나도 정말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겠지.

누구나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니까.

그 시점이 내게는 말도 안 되게 조금 늦게 인지되었을 뿐이다.

청소년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뛰었다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니었다.

40대에 찾아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마지막으로 부모님 대신 나의 질풍가도를 마주하는 아내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드립니다.


'결국... 겨울도 언젠가엔 끝이 나고, 다시 봄이 돌아올 것이외다.'


나는 단지 겨울이 좋아서 조금 더 지내보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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