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걸음
팔에 생긴 종기(다른 이름으로 부르기엔 너무나 무서운 관계로) 치료차 '속초의료원'을 다니는 중이다.
의료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병원을 다녀본 건 처음이다. 괜히 기관 느낌이 나서 그런지, 살짝 공공의 품에 안긴 기분도 들었다.
'서울에도 의료원이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의료원을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속초에서 이름 있는 병원 두 곳—‘보광병원’과 ‘속초의료원’— 중 택일해야 했고, 나는 후자를 골랐을 뿐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숨은 병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강릉에 있는 '아산병원'까지 갈 정도로 사정이 급한 건 아니라는 판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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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으로 정형외과 의사 쌤을 만났다.
"어떻게 왔어요?"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어디 봅시다. 흠. 그런데 말이죠. 내가 다음 주부터 10일 정도 휴가를 다녀와야 해요. 중요한 개인사정이 좀 생겨서 말이죠."
의사는 만남과 동시에 휴가일정부터 공유를 해줬다. 아무래도 수술까지 고려한다면 본인이 아닌 다른 병원의 의사를 만나봐야 한다는 이유인듯하다.
"저 초음파 찍은 거 CD로 가져온 게 있는데요."
"잘됐네요. 영상의학과가 휴가 중이라서 지금 찍을 수도 없었는데."
영상의학과도 휴가로구나. 완전히 정밀하게 찍은 초음파는 아니더라도 일단 자료를 가져오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받아본 의사는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소견을 얘기했다.
"이게 근육 밑으로 생기지는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악성은 아닐 거야. 일단 오늘은 항생제 주사를 맞고 일주일치 약처방을 해줄 테니 경과를 좀 지켜봅시다. 그리고 아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음 주부터 휴가를 가요. 그러니까 휴가 가기 전에 한 번 더 검진을 받으러 와야 해요."
아무래도 상당히 급한 개인사가 있으신지 다시 한번 휴가계획을 공유해 주셨다.
"혹시라도 정 급하면 다른 큰 병원으로 가봐도 괜찮아요."
이 말을 들었을 땐 괜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벌써 병원을 몇 군데 떠돌았는데 다시 한번 새로운 병원을 찾아야 하는 건가.
'보광병원으로 갔어야 했나.'
"오빠 일단은 약 먹으면서 경과를 좀 지켜보자. 그리고 보광병원도 규모가 비슷해서 별 차이 없을 거 같아."
"그러려나?"
"아마도. 근데 일은 내가 다하는데 왜 맨날 오빠가 아픈 거지? 이해할 수가 없네..."
딱히 당장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일단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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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좀 나아졌어요?"
주말이 지나고 다시 의료원을 찾았다. 의사 쌤은 다시 한번 팔을 유심히 살펴보고 만졌다.
"욱신거리는 느낌은 좀 덜해진 거 같아요. 열감도 사라져 가는 거 같고요."
"잘된 일이에요. 몽우리 같은 게 잡히네요 이젠. 악성이면 이렇게 빠른 시간에 반응이 나오진 않으니 걱정 말고요.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라서 기억나는 대로만 적어봤다)"
환자로선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이 곤두서게 되는데,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말했는지 모르겠네요. 내일부터 10일 정도 휴가를..."
"네 얘기하셨어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 일단 난 자리를 비울 예정이라서 6월에나 만나야 할 거 같아요. 약을 더 처방해 줄 테니 일단 복용하면서 경과를 지켜봅시다."
"혹시 수술도 해야 할까요?"
"그야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의료원에 오기 전 들렀던 병원에서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전에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이 제거 수술이 어려운 건 아니라고 했었는데 제거가 나을까요?"
"음...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 이거 제거하려면 수술 부위도 제법 찢어야 하고 지혈대도 잡아야 하는데 간단하다고 했다고요?"
‘지혈대까지는 얘기 안 들었는데…’
"입원도 해야 하는 그런 수술인가요?"
"당연하죠. 그러니까 내가 계속 호전되는지 상황을 보자고 하는 건데. 수술은 불가피할 때나 하는 거지. 뭐 원한다면 할 수야 있는데 일단 약을 먹으면서 상황을 좀 더 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간단할 거라 생각했던 수술은 의외로 복잡했다. 오히려 듣고 나니 더 심란해졌다.
"악성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오늘도 항생제 주사 한 대 맞고 처방해 준 약 잘 먹고 나중에 봅시다."
그나마 마지막 말이 위로가 돼주었다.
그렇게 의사 쌤은 개인사 해결을 위해 휴가를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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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언급했듯이 난 기본적으로 '엄살'을 장착하고 있다. 언제든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톡⎯ 터질 준비가 되어있는 셈이다. 팔에 종기가 생긴 뒤로부턴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내 팔 근처로 못 다가오게 하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팔에 닿을 거리 안에 인영이 어른거리면,
"아야얏! 나 팔 아파! 오지 마!"라며 비상경보음을 입으로 자체 발산한다.
"아니 무슨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아프다고..."
"아프다고!"
"......"
그럴 때면 어린아이들과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
"오빠가 빨리 나아야 집안 분위기도 나아질 텐데 이거야 원."
나도 빨리 팔문제가 해결되면 정말 좋겠다. 의사 쌤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약 잘 먹고, 최대한 환부를 건드리지 않는 것뿐일 테지. 사실 진짜로 크게 아픈 사람이 이런 내 글을 읽는다면 호들갑도 유난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태생이 엄살쟁이인 걸 숨길 방법이 없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엄살쟁이는 그래서 오늘도 글을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