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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29. 2023

40대엔 사과할 일 좀 그만 만들자.

네 걸음

“아.. 놀러 가고 싶어. 날이 이렇게 좋은데 출근해야 하다니.” 


이번에 이직한 회사에서는 굳이 엄청나게 장황한 연차 사용의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음.. 근데 정말 오늘 그냥 쉰다고 해도 되는 걸까?’ 쉬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정말 출근하기가 싫어졌다. 조심스럽게 회사 채널에 메시지를 올린다. 


날이 좋아서 그리고 기분이 꿀꿀하기도 해서 하루 쉬겠습니다.


메시지를 올릴까 말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백 번의 고민을 한 거 같다. 하지만 결국 저질러 버렸다. 살짝 미친 짓을 한 건가 싶어 후회도 됐지만 막상 글을 쓰고 나니 ‘이제 뭐 어쩔 건데?’ 싶어 마음도 후련해졌다. 


그래도 괜히 마음이 쫄려서 메시지를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들락날락 거리며 누군가 리액션 또는 답글을 달아놓지 않았을까 싶어 살펴봤다. 3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리액션이 없다. 


’… 괜찮은 거겠지?’ 


마음이 불안해져 인사 쪽 담당자에게 몰래 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연차 이렇게 써도 괜찮나요?
안녕하세요 ㅎㅎ 안될 건 없는데 대단하시네요? ㅋㅋ
아.. 좀 그렇죠?
괜찮을 거예요.


찝찝한 마음이 들어 막상 그날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거 같다. 쉰다고 해놓고 괜히 회사 채팅방에 기웃거리며 뭔가 소식이 있나 살펴보기도 하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공부를 해보려고 노트북을 켰다가 유튜브만 보다 끄기도 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저녁 11시가 되어 있었다. 


’벌써? 뭘 했지 오늘.. 그냥 출근할 걸 그랬네.’ 




다음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괜히 찔려서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노트북을 켜고 어제 있었던 일을 살펴봤다. 


’음.. 뭐 크게 진행된 건 없네.’ 


커피나 한잔 마실 생각에 로비로 이동한다. 때마침 출근하는 CEO와 마주쳤다. 그가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뭐지 이 불안함은..’ 


잘 쉬었어요? 어제 메시지 봤어요.” 

”하하.. 네. 쉬면서 이것저것 살펴봤는데 하루가 금방 가네요.” 

”잘했어요. 나도 이유 없이 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쉬고 나면 일이 더 잘되더라고요. 이따 시간 돼요? 회의할 게 있어서.” 

”아? 네. 그럼요.” 

”그럼 이따 봐요.” 

”네!” 




회의시간이 돼서 나와 그리고 다른 팀 멤버 몇 명이 함께 초대되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괜히 손에 땀이 난다. 


”개발이 문제예요 문제! 일정도 맨날 안 지키고 뭐 말만 하면 어렵다고 하고. 우린 뭐 안 바쁜 줄 알아요? 할 말 있으면 좀 해봐요 변명이라도.”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파트 팀장이 큰소리를 낸다. 


’다짜고짜 호통? 후.. 한 번은 참자.’ 


”이게 무조건 안된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블라블라..” 

”핑계 좀 그만 대면 안 돼요? 그리고 프리맨처럼 이상하게 쉬니까 자꾸 회사 기강이..” 

”자. 진정 좀 하고. 우리가 목적 없이 싸우려고 회의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연차문제는 여기서 나올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이럴 줄 알았어. 꼬투리가 잡고 싶었는데 내가 구실을 줬네.’ 




가끔 꿈처럼 예전 일이 떠오른다. 특히 누군가와 싸웠던 일 위주로 떠오른다. 


’아마도 일로 엮인 사이만 아니었다면 싸울 일도 없었겠지?’ 


그때의 우린 왜 그렇게 싸웠을까. 같은 회사에서 만나 같은 목표를 향해 일을 하던 사이였는데. 이상하다. 40대가 되고 나서 약해진 건지 미안했던 순간이 참 많이 떠오른다. 들어줄 이는 없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몰래 사과를 한다. 


’미안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해야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안 떠오를지 모르겠다. 억지로 없앤다고 없어질 기억도 아닌데. 그냥 떠오를 때마다 몰래 사과를 해야겠다. 고작 사과일 뿐인데 그때는 그게 참 힘들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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