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성프리맨 Dec 06. 2023

40대엔 변명할 일 좀 그만 만들자.

다섯 걸음

작품의 특성상 경험과 창작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시작부터 변명이라니..




승진이 될 때 마냥 좋은 일인 줄만 알았다. 직장인에게 연봉 인상과 더 핵심적인 일을 맡기는 것만큼 좋은 제안은 없겠지.


”저.. 근데 아직 제가 이런 역할을 할 정도의 능력이 있을지..”


겸손 반, 진심 반을 담아 제안에 대한 답을 건넨다.


”충분히 생각해 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니까요. 각자가 검토해 보고 일주일 뒤 다시 얘기 나눕시다.”

”좋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얘기를 건넨다.


”잘됐다! 돈 들어갈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었는데.”

”돈 생각하면 해야겠지.”

”돈도 돈이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일 해보고 싶어 했잖아.”

”그렇긴 한데.. 무섭기도 하고.”

”다 그렇지 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파이팅.”


일단 아내는 찬성. 다음으로 오랜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과도 얘기 나눠봐야겠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생각이지 않나? 정말 원하는 거 맞아?’


회사의 제안을 거절하면 결국 다른 리더를 뽑겠지. 문득 다른 회사에서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오른다. 새로 온 사람으로 인해 결국 입지가 좁아지며 이직을 해야 했던 일. 좋아했던 동료가 억울하게 쫓겨나게 된 일.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했던 일이 크게 부각된다.


’만약 이번에 제안을 거절한다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지려나?’


장담할 순 없지만 그럴 거 같다. 새로운 누군가가 왔을 때 가장 통제하기 껄끄러운 대상은 바로 나일 테니까. 나이대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선점하고 있는 게 많은 상태니까. 지긋지긋한 나이가 또 여기서 걸리는구나. 40대가 돼 간다는 건 마냥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 좋지 않은 게 분명하다. 특히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더 그런 거 같다.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지 않는 한 나의 생각은 그저 꿈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생각 좀 해봤나요?”

”네. 제안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다소 무미건조하게 얘기가 진행되고 승진이 된다.


’역시나 별로 달라지는 건 없네.’


대신 주변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조금 변한 느낌이 든다. 어색하지만 또 나쁜 느낌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회사의 공지가 내려왔다.


’이제부터는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겠지.’




회사일 그리고 팀 동료의 비중이 점점 삶의 비중에서 커지기 시작한다. 일은 끝이 없다. 어쩌면 일을 끝내는 순간 회사는 많은 사람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필요해서 하는 일 그리고 보여주기 위한 일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일의 중요도를 따지면 사실 안 중요한 일은 없지만 사람에 따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불만은 점점 회사 그리고 책임자인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한다.


’어쩌겠어. 이 정도는 예상한 거잖아.’


집에서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빠는 맨날 바빠!”

”어차피 자느라 주말에도 안 놀아 줄 거잖아.”

”집안일 좀 하면 안 돼?”


그럴 때마다 회사를 핑계 삼아 변명을 늘어놓는다. 집에서도 변명, 회사에서도 변명 어느 순간 변명하기는 하루 일과 중 중요한 행위 중 하나가 되고야 말았다.




”그 친구 어떻게 생각해요?”

”아직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조금 힘들어하긴 하는데. 수습기간만 잘 지나면 분명 좋은 퍼포먼스 보여줄 거라 믿습니다.”

”책임질 수 있어요? 내가 볼 땐 지금이라도 정리해야 할 거 같은데.”


아차 싶었다.


”면담을 해보겠습니다.”

”해보고 알려주세요.”


카톡이 울린다.


오늘 집에 언제 와? 애들 아파서 픽업해야 하는데. 혹시 반차 쓸 수 있어? 난 갑자기 쓰기가 힘든 거 알잖아.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문이 열려 있는 회의실이 눈앞에 보인다. 회의실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의자에 털썩 앉는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잠시 그대로 있는다. 폰을 집어 들었다 다시 내려놓는다. 그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가방을 챙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대엔 사과할 일 좀 그만 만들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