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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색(倭色)이 짙어."
일본문화를 좋아하던 내가 자주 듣던 말이었다.
'딱히 일본산 콘텐츠만 보는 건 아닌데.'
사실 잡식성에 가까운 취향덕에, 특정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이는 편이긴 하다.
그러니까 그런 내게 '왜색'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건 맞지 않아.
게다가 '倭'라는 표현은 다소 '인종차별'적인 단어란 말이지.
일본사람도 듣는 거 거북해한다고.
마치 우리한테 '춍'이니 '조센징'같은 말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단 말이야.
"그래서 광복절도 얼마 안 지났는데 '귀멸의 칼날'을 본 건 잘한 일이고요?"
"......"
8/22일(금), 그러니까 어제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개봉했고, 오랫동안 팬이었던 난 당연히 볼 수밖에 없었다. 몇 년에 걸쳐 이어져온 시리즈물의 '마지막'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귀걸이에 있는 패턴도 욱일기를 상징하고, 사무라이 문화도 그렇고, 그걸 꼭 봐야만 속이 후련하던가요? 부끄럽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애국심이 부족해서일까요...
딱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일본 문화를 동경한다거나,
특별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단지... 충분한 재미를 느끼게 해 줬다는 것(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다),
마침내, 기다려온 최종장을 애니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전부였어요.
그냥, 애니 하나를 봤을 뿐인데도 나는 '취향 검열'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살면서 딱히 반국가적인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단지 일본색(문화)이 들어간 걸 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주홍글씨'가 찍혀야 하는 건가.
물론 나의 개인적인 감정을 전부인양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억울하긴 한걸.
"그럼 안 보면 되잖아요."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요.
이미 봐온 시간도 길지만 앞으로도 보고 싶은 걸요.
딱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조용히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감상할게요.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했었다.
"매국노."
악의... 가 있었다. 아니 느껴졌다.
하지만 싸우고 싶진 않았다.
"네. 매국노네요."
일부러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더 이상 그와 대화 나눌 이유가 없었으니까,
벌어진 간극이 좁혀질 리도 없겠지.
아쉽지 않았기에 멀어짐을 받아들였다.
"지금 그러니까 귀칼 본거로 뭐라 하면 말도 섞지 않겠다 이 말이죠?"
"어차피 이해, 해주지 않을 거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난 당신을 설득할 자신도 없는걸요.
그냥 내가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방해만 하지 말아 주세요.
저도 딱히 당신을 괴롭게 만들 생각으로 보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여기까지만 함께해요.
그리고 잠시만 지나면,
우리는 한참 멀어진 상태라서 다시는 만날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잠시 묵언하도록 해요, 서로를 위한 일이에요.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역사를 '망각'해서 보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