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예전의 위세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길’은 잘 유지되고 있었다. 워낙 비공개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기조 때문에 현재는 주목받고 있지 않았다.
’철환 아저씨를 만난 지도 꽤 오래됐구나.’
홍심은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예전 백철환과 같이 퇴마의식을 했던 그날도 생각난다. 그리스도의 길이 위치한 교회 그중에서도 백철환이 있는 곳은 산속에 위치해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그는 되도록이면 산에서 지냈다. 아무래도 병에 걸리고 나서부터 산에서 생활하던 습관이 남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교회 입구엔 철로 된 문이 사람키보다 높게 세워져 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 담장과 군데군데 적갈색의 녹이 슬어 있는 문은 세상과 단절된 경계처럼 느껴진다. 홍심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인터폰의 벨을 누른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이홍심이라고 합니다. 철환 아저씨에게 제 이름을 알려드리면 설명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흘러간다. 5분. 10분. 어느새 20분이 지나갔다. ’철컹’ 문이 열리면서 백발의 여성이 맞이한다.
”홍심 님. 이 쪽으로 오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내부는 꽤나 큰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깥의 우울한 모습과 달리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설치된 벤치나 조각상들의 모습에서 흘러간 세월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희 교주님은 금식 기간 중이십니다. 외람되지만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상의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교주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요즘 부쩍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많은 걱정이 들곤 한답니다. 주책맞은 노인의 노파심이라 생각하고 넘어가 주십시오.”
’철환 아저씨도 이제 나이가 있으시구나.. 하긴 시간이 참 많이 흘렀지.’
걸어가며 홍심은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문득 생겼다. 감상에 잠시 빠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시 잡는다.
"똑똑똑"
”들어오십시오.”
’여전히 정중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항상 동등한 느낌으로 대해주셨었지.’
”홍심이 왔구나. 이게 얼마만이니?”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느새 노인이 된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홍심은 젊은 시절 철환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저씨 많이 늙었지? 허허.”
”왜 이렇게 말라지셨어요. 단식 중이셔서 그러신 거죠?”
”그렇겠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고민되는 게 참 많구나. 이 나이 정도되면 번민이 없을 줄 알았건만.”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하시네요. 변하지 않으셨어요.”
”고맙구나. 너도 참 많이 컸다. 밖에서 봤으면 잘 못 알아봤겠구나. 물론 내가 밖을 나가야 생길 상황이겠지만 허허.”
잠시 안부를 주고받던 홍심은 본론을 꺼낸다.
”제가 찾아왔을 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셨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잠시 숨을 고르며 홍심은 말을 이어간다.
”승호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희 집안의 저주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전 믿고 있는데 기다려줄 시간이 없어요.”
”내가 만나봐 줬으면 하는 거구나?”
”맞아요. 분명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 느낌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아저씨가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승호님은 아저씨와 같은 신을 믿는 사람이라 제가 도울 방법이 없어요.”
”흐음..”
”한 번 데리고 와도 괜찮을까요?”
”홍심아.. 난 내 능력 때문에 평생을 갇혀 살고 있는 거란다. 한때는 믿었다. 내 힘과 능력으로 힘든 사람을 돕는 게 천명이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단다. 난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이 봤고 모두를 살릴 수 없는 것도 깨달았다. 그중에는 도리어 나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무서웠던 게다. 승호라는 그 친구를 데려오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가 나와 같은 삶을 선택한다면 한편으론 많이 슬플 거 같기도 하구나.”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게 뭐 있겠니. 네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니. 우리는 가진 능력 때문에 평범함을 잃은 사람이다. 그것도 선택이겠지.”
문득 홍심은 자신의 삶과 닮은 백철환을 보며 얕은 한숨을 내쉰다.
”어쩌겠어요. 저와 아저씨의 운명인걸요. 전 평생 동안 복수를 꿈꿔왔어요. 이젠 복수심도 많이 약해졌지만 악귀 때문에 저와 관련된 사람이 거의 다 죽었어요. 제 능력으로 언니조차 구할 수 없었어요. 이쯤에서 악귀를 소멸시키고 싶어요. 하지만 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미안하다. 내가 도왔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아저씨는 아저씨의 삶을 살아온 거니까요. 승호님 좀 부탁드릴게요.”
”알았다. 하지만 그가 정말 나처럼 될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하겠구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