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써 보는 이야기 33
오래도 살았다. 고향에서만 자그마치 80여 년을 살 줄 알았겠나.
별일도 없는데 눈은 또 왜 이리 빨리 떠지는지.
[오전 04:30]
이 시간엔 볼 것도 마땅치 않다. 얼마 전 놀러 왔던 손주가 컴퓨터로 보라며 이것저것 해주긴 했는데, 복잡스러워서 쓸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조용한 것보단 나으니까.
켜진 TV속에선 방송 하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있던 건 아니어서,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차리기 전 누운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의 표정엔 근심 걱정 따위가 없어 보였다. 그래요. 그렇게라도 먼저 가지 말고 있어 달라고. 듣지 못할 속마음을 몰래 삼킨 후 부엌으로 향했다.
빨리 아침을 해 먹어야 한다. 오늘은 꽤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라 지체할 여유 따윈 없다. 아내의 정기검진날이면서 친구인 장노인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까지는 두 시간 거리다. 속도를 내면 더 빨리도 가겠는데, 주변에서 자꾸 조심하라는 바람에 더욱 속도에 신경 쓰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귀찮게 찾아와서 면허 반납을 하라고는 하는데, "이 양반아. 나도 운전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내도 그렇고 동네 지인도 그렇고 위급할 때 나 아니면 누가 데려간단 말인가. 갑갑한 소리.
"아버님, 면허 반납하시면 돈도 드려요. 그걸로 대중교통 이용해서 다니시면 좋잖아요. 안 그래도 요즘 사회적으로 고령 운전에 대한 위험성 얘기하는 것도 많이 들으셨잖아요. 아버님께서 그러실리는 없겠지만 그냥 이참에 반납하시면..."
"알아요 안다니까 그러네. 돈 받아서 버스 타고 다니라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떡해. 병원까지 6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우리 같은 늙은이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말하는 내 입만 아플 뿐이다. 이해한다면서 이 양반아. 맨날 반납만 하라고 하면 단가? 애들 사는 데가 서울이긴 한데, 걔네도 살기 바쁜데 불편하게 뭣하러 가 있어. 아직까지는 운전을 할 수라도 있으니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2주 전에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 나이쯤 되면 특별한 소식이래 봤자 부고뿐이지만. 인사만 몇 번 나눴던 정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던가. 진작 알았다면 나라도 병원엘 데려갔었을 텐데. 내가 동네 운전기사를 자청한 건 특별한 사명감 이런 게 아니라, 불쌍한 노인네끼리라도 서로 돕고 싶어서였다. 위험하다는 걸 왜 모르겠나. 운전대만 잡으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더더욱 조심해서 저속으로 운전하려는 건데.
우리 같은 노인은 말이야. '짐'이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누구는 짐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나. 내가 나고 자라고 해온 일이란 게 고작 시골일이 전부라서 이러고 사는 게 죄도 아니고. 운전은 안 하고 살 수도 없는데. 연일 뉴스에서는 죄인으로 몰아세우니 원.
시골 와서 살아보라고들 해라. 현실은 어떤지도 모르면서 다들 입은 살아가지고. 택시 타고 다닐 수 있는 돈이라도 주면 모를까. 미안하게도 차는 포기 못하겠네. 나는 안사람과 주변 사람들 실어 날라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