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에 관한 이야기
쓰는 사람은 ‘작가’일까?
정의를 살펴보면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뜻하던데,
무릇 업을 유지함에 있어서는 경제성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아마추어로서 아무리 높은 자긍심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프로가 되지 못했다면 무엇으로 불릴 수 있을까.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내내 가장 많이 든 생각이었다.
“작가로서의 꿈…”이라는 주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팝업 전시회에 걸리는 글은 ‘희망’을 담아야 할까, 아니면 ‘불안감’이어도 상관없을까?’였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별 거 없었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온라인 친구 덕이었다.
참고로 그는 이미 브런치 작가였다.
[브런치에 글 올리면 지금보다 더 반응이 좋을 거 같아요. 꼭 해보세요.]
용기를 얻고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만 해도 그냥 글 쓰고 올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심사과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황스러웠지만 심사와 관련된 질문 내용을 채워 전송했다.
그리고 결과는 보기 좋게 탈락.
그간 SNS에서 꾸준히 글을 써왔으니 쉽게 통과될 줄 알았건만,
막상 까이고 나니까 현실을 깨달았다. 덩달아 자신감도 급하락 했다.
‘브런치 작가 기준도 통과 못하면, 앞으로 글 쓸 자격이 없는 거 아닐까?’
비약도 심해졌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자격지심에 빠져 버리다니.
도저히 이 기분으로는 SNS에 글 못 쓰겠어.
다시 또 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취미로나마 써온 글쓰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증명이 필요했다. 그 증명이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해보기도 했다.
‘떨어지면 또 보내면 되지.’ 하지만 태연할 수 있겠냐고. 오지 않는 답변만 기다릴 뿐이었다.
23년 9월 27일.
잠에서 깨어나 평소처럼 휴대폰을 들었을 때 메일이 하나와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그렇지. 안될 리가 있겠냐고. 비련과 시련은 이제 사라져라. 꼴도 보기 싫으니까. 들어가고 싶던 회사 면접에 통과한 것처럼 기뻤다.
그렇게 브런치에서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여기까지가 나름 ‘희망 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불행 편’을 쓰면 되나?
정말로 불행에 대해 쓸 생각이었다. 오늘이 25년 9월 6일이니까, 작가 승인을 받고 나서 2년 가까이 됐구나.
2년여 동안 나는 과연 뭘 이루었지?
작가로서의 꿈에 다가서긴 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진 못했다. 쓰는 이를 ‘작가’라 칭한다 하면 억지로라도 비슷하게 엮어볼 법도 한데, 스스로가 인정을 못하겠다. 그렇다면 지난 2년의 세월은 내게 ‘고통’뿐이었을까.
그리하다면 나는 오늘 불행에 대해 잔뜩 써보리라. 감히 시답잖게 작가의 꿈을 들먹이던 자의 결말을 어디 한 번 맛 좀 봐볼 테냐?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일은 뒷전으로 두면서까지 매일 지켜온 약속이 하나 있다.
‘내가 필시 홀린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글이라는 게 사람을 홀리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매일 글쓰기를 지속할 이유 따위가 어디 있겠냐는 얘기다. 적어도 2년여 동안 나는 매일 글을 하나씩 써온 것이다. 아픈 날엔 아파서 발로 쓰고, 멀쩡한 날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 시답잖은 얘기를 글로 쓰고 그런 식이었다.
“신선 놀음하듯 늘지 않는 실력을 탓하며, 허송세월을 살아왔더니, 여전히 제자리에 있습니다.”라고 외치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포기했어야 했다. 적어도 몇 달 전에는 아니 1년 전쯤에라도 접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어째서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까.
이런 내 상황을 단순히 ‘불행’으로 여기면 될까?
정말로 작가의 꿈에 나는 다가서지 못하는 중일까?
이에 대한 답은 지금의 나로선 말 못 하겠다.
그렇지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즐거운 걸.
행복하다가 아니라 즐겁다.
이런 마음 상태로 어떻게 불행에 대해 잔뜩 쏟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직은 좀 더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게 있어 작가의 꿈이란 첫 시작도 그랬지만, 결국 나 좋자고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로 나는 앞으로도 나 좋은 일을 계속해볼까 한다.
매일 쓰는 글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작가의 꿈에 다가서는 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