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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집의 미학, 결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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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아내가 청소를 하고 난 뒤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다. 하지만 직접 청소를 한 본인이 아니기에 말을 꺼내는 순간 화난 표정을 그대로 볼 수밖에 없다.


“어디서 하지도 않는 게 입만 나불거려?”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머리카락이 있어서 있다고 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아니 나쁜 거야. 그럴 거면 직접해.”


만약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입장이었다면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잠시해 보다 말았다. 왜냐하면 그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별다른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테니. 어른이란 원래 속으로 생각을 감출 줄 아는 법이다. 단지 우리는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굳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뿐이다.


“오빠는 말투가 문제라고. 듣는 순간 짜증이 팍 나게 만들어. 아랫사람 하대하듯이 그게 뭐야?”


인정. 하지만 일 앞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잘해보자는 의미는 매한가지인데 결국 말투의 문제인가. 하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했듯 강한 어조로 말한 내 잘못도 분명 크겠지만 말이다. 문제를 발견한 건 나쁜 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친절하지 못했던 태도를 사과할 수밖에.


“알았어. 강하게 말해서 미안해. 그런데 진짜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너무 많았다고. 본 걸 안 봤다고 할 수는 없잖아.”

“......”


여전히 아내는 뾰로통했다. 옆에 있던 아이가 말을 거든다.


“아빠도 제발 일 좀 하세요… 엄마만 하잖아.”

“아니 방금 전에 아빠도 하고 왔어.”

“하긴 뭘 해.”

“싸우지 마세요…”


아무래도 머리카락 때문에 상황이 나빠질 듯하다. 이럴 때면 내 눈을 저주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깟 머리카락 못 본척하면 됐을 거 아니냐며. 나도 직장 동료였다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넘겼을 거다.


역시나 그냥 넘기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 내색하지 않고 혼자 처리한다면 아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텐데… 어떻게 전달해야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수많은 연산을 해보지만 결국 이렇다 할 결론엔 도달하지 못했다. 그저 아내의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다음에는 봐도 못 본 척하시구려.”


조언은 감사하나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내 유일한 재능인 ‘트집 잡기’가 존재하는 한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남의 들보를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으니 이를 어쩐다. 다음번에는 최대한 말투라도 부드럽게 바꿔서 접근해 봐야겠다.


아무래도 말이다. 결혼생활의 진짜 기술은 바로 말투 조절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부드럽게 바꾼 말투로도 아내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면 그땐 어쩌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지만 일단 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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