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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책을 발간했다. 물론 혼자서만 이룬 성과는 아니니까 너무 들뜰 필요는 없을 거 같다. ⎯ 혼자 출판했다 쳐도 들뜰 이유가 딱히 없을 거 같지만
“그런 것 치고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글을 써보지 않은 아내가 어찌 내 마음을 알겠는가? 가볍게 무시했다.
“야… 무시하냐?”
위험 경고가 울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오늘 북토크 하러 가야 해서 이것저것 신경이 쓰여서 그랬어.”
“흥… 누군 안 해봤나.”
‘안 해봤잖아?’ 하지만 속마음까진 굳이 꺼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북토크가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어찌어찌 6개월가량을 글쓰기 수업과 함께 보내긴 했는데 중간에 도망치고 싶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몇 가지를 써보자면.
'이 수업이 정말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게 맞아?'
'주말에 놀러 가야 하는데…'
'그냥 재택으로 쓰고 한 달에 한번 정도 모이는 형태는 안되나.'
이렇다.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시간낭비’에 대한 걱정에 가까웠다. 수업에 나가는 동안 스몰토크도 힘겨웠다. 나이차이가 나는 걸 떠나서 대화에 잘 끼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대화를 피하면 피할수록 결여된 사회성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은 저토록 즐겁게 지내는데… 그냥 아무도 말하지 말고 글이나 썼으면 좋겠다.’
어차피 대화에 끼지도 낄 생각도 없는데 글쓰기 수업에 맞게 글이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아마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기이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향기 ⎯ 냄새는 싫어! ⎯ 같은 거랄까. 아마도 이런 성향이 글에도 담겼는지 모르겠다.
“프리맨이 쓴 글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고 어딘가 나이에 맞지 않아 보이는 느낌이 묻어나는 거 같네요.”
깊게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쓰고 나서 뒤늦게 생각해도 괜찮은 것 아니던가. 조언은 감사하지만 그다지 글에 반영하고 싶진 않았다. 내게는 내가 쓰는 글의 색과 온도가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잃고 싶지 않았다 나다움을.
역설적이게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쓸수록 점점 고립감이 심해졌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교류하지 않는 인간은 글조차도 고립되는 것일까?’
고립된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쓰면 쓸수록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하는 느낌. 실은 그래서 빨리 수업이 끝나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나의 부족한 모습은 관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찾아왔다. 오늘 하루 북토크만 무사히 끝내면(어차피 평소처럼 조용히 있겠지만) 한동안은 자유로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속박한 적 없지만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도 6개월 수업받고 나니까 책이라도 하나 남잖아. 축배를 들라고.”
일단 손에 쥐어보지 못한 상태라 실감은 나질 않는다.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나면 드는 감상이 있으리라. 그때의 나는 또 어떤 감정을 느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