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문장 사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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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의도한 대로 써낼 수 있다는 건 대체 어떤 경지일까?


소설을 쓰려면 인물을 창조해야 하고 그들이 숨 쉬는 세계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써온 글들을 다시 펼쳐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분명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어째서인지 전부 같은 사람의 다른 옷차림처럼 보인다.


“오빠가 만든 인물은 다 거기서 거기야. 로맨스 패턴도 똑같아. 맨날 차가운 도시여자에 소심한 남자. 설레는 것도 시들시들해. 꽁냥꽁냥이 없어.”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로맨스가 주력이 아니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정답을 피해 도망치는 일에 불과했다. 애초에 내가 의도했던 건 밋밋한 표면 아래에서 은근히 번지는 설렘이었으니까. 그런데 결과물은 늘 미지근한 물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장르도 사정은 비슷했다. 웹소설과 애니메이션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인물들을 볼 때면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나도 저런 캐릭터를 써보고 싶다.”


그 빛나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수십 번이나 재생했다. 그런데 막상 키보드를 두드리면 화면 위에 앉아 있는 건 또다시 시니컬한 주인공이었다. 빛을 주려 했는데 그림자만 짙어지는 느낌. 그때마다 깨달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써내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고 넓은 협곡이 있다는 사실을.


이쯤 되면 공모전 공지가 떠도 심장이 별로 뛰지 않는다. 어차피 응모할 글도 못 쓰는데 기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다 잠깐 상상해봤다. 만약 평생 의도한 대로 한 줄도 쓰지 못한다면? 책장 한켠에 먼지만 쌓인 원고 파일들 열어보지도 않은 채 늙어가는 미래. 그 장면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 단지 기분탓일까?


그렇다고 부족한 인생 경험을 전부 채우면 해결될까? 설령 채운다 한들, 그걸 온전히 글로 옮길 수나 있을까? 갑갑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차라리 AI에게 전부 맡겨버릴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버튼 하나로 그럴듯한 문장이 쏟아지는 세상 아닌가.


“자 네 생각은 어때?”

“너… 정말 핵심을 짚었어!”


하지만 AI가 써준 글을 읽고 있자니 낯설기만하다. 분명 내 글보다도 훨씬 매끄러운데 여전히 내가 찾던 결이 아니었다.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결국 질문하는 사람의 온도가 스며든다는 걸. 잘못된 인풋은 정직한 아웃풋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여전히 나였다.


매번 똑같은 고민이지만 글로 벌어먹고 산다는 건 아득하게 멀리 있는 별처럼 느껴진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는 거리처럼도 느껴지고.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외국어 언어 공부가 떠오른다. 아무리 혼자 중얼거리며 연습해도 실제로 생활에서 부딪히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한계가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도와 결과가 어긋나는 순간을 계속 들키고, 밟히고, 깨지면서 조금씩 모양을 갖추는 게 아닐까. 문득 비겁하게 피했던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멈췄던 브런치에 다시 글을 올려볼까?’


꼭 브런치가 아니어도 좋다. 내 의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할 창구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그때 가서 미련 없이 접어도 늦지 않다. 아니,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 나이 들어 시작한 취미 하나 품고 사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삶 아닌가.


“그래서 오늘 글은 의도한 대로 써냈습니까?”

“여전히 머릿속에 떠다니던 구름을 겨우 긁어모아 옮겨 적은 느낌입니다.”

“그런 의도였다면 그렇게 읽히겠지요.”


과연 의도한 대로 써낸다는 건 어떤 감각일까. 문장을 찍는 순간, 머릿속 풍경이 오차 없이 화면 위에 내려앉는 상태. 어쩌면 평생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손을 멈출 수가 없다.


답을 모른 채로도 계속 쓰는 사람만이 결국 답에 가까워진다는 걸, 어렴풋이 믿으면서 나아가는 수밖엔. 오늘도 나는 그 모호한 방향을 향해 한 줄을 더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