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또 일본 노래예요?

317 걸음

by 고성프리맨

요즘 나는 J-POP에 푹 빠져 있다. 한국 노래는 언제 마지막으로 찾아들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숏폼 챌린지에서 우연히 귀에 꽂히는 노래 말고는, 신곡이 뭐가 나왔는지도 솔직히 잘 모른다.


“그냥 본인이 한국 노래를 안 듣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부터 이명이 생긴 뒤로 헤드셋이나 이어폰 대신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사는데, 그 덕분에 내 플레이리스트는 고스란히 집안 공용 자산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취향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도 전파됐다.


“아빠… 매국노예요? 왜 맨날 일본 노래만 들어요?”


아이는 꽤 진지한 얼굴로 물었고, 나는 잠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고 매국노가 되는 건 아니란다'라고 길게 설명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그냥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냥 듣기 좋아서 들어.”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한국 노래도 좋잖아요.”


맞는 말이다. 듣기 좋은 노래에 국경이 어디 있겠나. 좋은 음악이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상관없다. 다만 요즘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듣는 환경을 자연스럽게 일본어 위주로 맞춰놓은 탓이 크다. 공부라 쓰고 취미라 읽는, 꽤 즐거운 핑계다.


사실 일본 노래를 처음 듣는 건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낯선 파일명을 하나씩 재생해 보던 기억이 있다. 가사도 제대로 모른 채 멜로디에만 의지해 흥얼거리던 그 시간들. 그러다 한동안 멀어졌던 J-POP을 다시 찾게 된 건 불과 1년 남짓.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크다.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묘한 여운이 남는데, 그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붙잡아주는 게 OST다. 이야기의 잔상을 음악으로 다시 더듬는 느낌이랄까. 애니 OST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작품의 또 다른 얼굴 같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했겠지만, 감정을 밀어붙이면서도 인위적이지 않게 다듬는 솜씨가 놀랍다. 일본 콘텐츠가 가진 노련함은 이런 지점에서 드러난다.


좋아하는 가수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예전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는 꽤 풍성하다.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멈춰 서서 가사를 곱씹게 된다. 사랑 이야기라도 표현 방식이 다르고, 일상적인 장면 속에 철학적인 질문을 슬쩍 끼워 넣는다. 과장 없이 말해, 글을 쓰는 입장에서 참고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애니의 서사와 맞물려 흐르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이야기와 음악이 서로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보인다. 감정의 타이밍, 여백의 사용, 직접 말하지 않고도 전달하는 방식. 그걸 보고 있자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무릇 창작이란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좋은 창작물은 설명하지 않고도 납득시킨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도 스며들게 한다. 일본 애니가 주는 정서와 J-POP의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방향이 언젠가 밥벌이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까지 포함해서.


어쩌면 나는 단순히 일본 노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창작의 태도를 동경하는 건지도 모른다. 듣는 일은 결국 배우는 일이기도 하니까.


오늘 아침은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노래로 시작할 생각이다. 스피커에서 익숙한 전주가 흐르면, 아이는 또 한마디 던질지도 모른다.


“아빠, 또 일본 노래예요?”


그러면 나는 아마 어제와 똑같이 웃으면서 대답하겠지.


“응. 근데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