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난 자리의 크기

318 걸음

by 고성프리맨

누군가 놀러 왔다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집의 크기가 느껴지는 오전이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 형님 가족이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어제 눈썰매장에 갔을 땐 눈이 모자라 아쉬웠는데, 정작 오늘은 이렇게 넘치듯 내린다. 날씨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묘한 공기가 남는다.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겹쳐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전자가 조금 더 크다. 평소와 다른 리듬으로 며칠을 지내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이 든다. 그렇다고 너무 짧으면 섭섭하고, 너무 길면 버겁다. 적당한 거리와 시간이 오히려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만든다. 지금 느끼는 이 가벼운 아쉬움이 그래서 싫지 않다.


큰 조카에게 아끼던 샤프를 건넸다. 처음엔 0.3mm 샤프심만 한 통 쥐여줄 생각이었다가, 문득 그것만 주는 그림이 우스워 보여서 마음을 바꿨다. 쓰던 물건을 주는 게 괜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손에 익은 물건은 나름의 정이 있다. 윤서의 필통 속에서 오래 굴러다니며 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명절이면 돈도 사람처럼 오간다. 형님 내외가 우리 아이들 손에 용돈을 쥐여주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봉투를 건넨다. 때로는 먼저 건네기도 한다. 주고받는 사이에 잠깐씩 웃음이 돌고, 아이들 얼굴이 밝아진다. 돈의 액수보다 그 순간의 들뜬 공기가 더 크게 남는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집 안에 작은 활기가 번진다.


오늘은 오랜만에 조용히 앉아 글을 쓴다. 눈치를 볼 필요도 괜히 예민해질 이유도 없다. 어제는 사소한 일로 아내를 재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북적임 속에서 괜히 날이 서 있었던 모양이다. 고요해진 집에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니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형님의 일 이야기를 얼핏 전해 들었다.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게 안정되지 않는다. 명절에 웃고 떠드는 동안에도 각자의 자리에는 각자의 걱정이 남아 있다. 그래도 잠시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 덕분에,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그렇게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우리는 여기 남고, 형님 가족은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함께하지 못한 일정과 아쉬움이 조금 남지만, 다음을 기약했으니 충분하다. 명절마다 얼굴을 확인하는 일 자체가 이미 큰 의미다. 아이들이 더 자라고 시간이 흐르면 모임의 모양도 달라지겠지만, 그때는 또 그때의 방식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 목소리로 가득하던 집이 고요하다. 그 사이에 남은 여운을 느끼며 그렇게 천천히 오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