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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찾아 헤맨 영화가 하나 있다. 내용은 얼핏 기억나는데 출연진은 모르겠고, 시간도 벌써 30여 년 이상 흘러버려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어린 시절 강렬한 공포를 심어줬던 몇몇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유일한 힌트). 그래서인지 가끔 그 영화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보곤 했다. 매번 허탕을 치면서도 말이다.
그러다가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ChatGPT에게 물어보면 알려줄 수 있을까?”
단순한 호기심은 조금씩 설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로 찾아진다면, 몇십 년 동안 그렇게 찾아 헤매던 정보를 마침내 얻게 되는 순간이니까. 나는 괜히 손가락까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프롬프트 창에 한 글자씩 입력했다.
[영화 하나를 찾고 있는데 도저히 못 찾겠어. 거의 30여 년 전에 봤던 영화인데. 미국 영화 같고(더빙판으로 봐서 잘 기억은 안 남) 대략 내용은 젊은이들(혹은 대학생 서클?)이 나와서 주사기로 약물 같은 걸맞으면 일정 시간 동안 과거에 죽었던 사람을 만나거나 그럴 수 있는 내용이었어. 정확하진 않은데 크리스천 슬레이터도 나왔던 것 같은데, 그 사람 필모그래피를 봐도 비슷한 영화는 못 찾은 것 같아.]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올라왔다.
“말씀하신 내용으로 보면 거의 확실하게 이 영화입니다.”
첫 줄을 보는 순간 오랜만에 전율이 일었다.
“진짜? 진짜로 찾았다고? 내가 몇십 년 동안 못 찾았던 정보를?”
영화의 제목은 “Flatliners(한국명: 유혹의 선)”이었다.
줄거리 요약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거의 확신했다.
“어? 맞네? 맞아! 이 영화야!”
크게 소리를 지르진 못했지만 속으로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마침내 그토록 헤매던 안갯속에서 집으로 가는 이정표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리메이크작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조금 더 놀라웠다. 그렇다는 건 생각보다 꽤 유명했던 영화였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솔직히 많이 놀랐다. 반신반의하며 던진 질문이었는데, 단 몇 초 만에 오랜 염원을 풀어줄 줄이야.
GPT 넌 그냥 신이야 신.
적어도 ‘기억 속 영화 찾아주는 분야’에서는 말이다.
오랜만에 그 영화를 제대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잠깐 스치듯 본 것이 전부였던 영화. 그런데도 몇십 년 동안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 있던 장면들. 이제는 그 기억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처럼 다시 무서워서 벌벌 떨게 될까.
아니면 세월이 흐른 만큼 덤덤하게 보게 될까.
뭐, 어쩌면 예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기억이란 원래 실제보다 조금 더 과장되어 남는 법이니까.
그래도 상관없다.
적어도 이제는 찾지 못한 채 궁금해할 일은 없을 테니까.
초콜릿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