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고맙다는 말은 못하겠어

321 걸음

by 고성프리맨

호기롭게 떠났던 캐나다.


설렜던 시작과 달리 끝은 볼품없는 귀환이었다. 몸도 마음도 다친 채 돌아왔을 때, 내가 떠나기 전 그대로 남아 있던 현실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고작 1년 정도 하던 일을 접었다가 돌아왔을 뿐인데,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전의 경력은 뒤로 밀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고작 1년밖에 안 쉬었다고.’


하지만 회사의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든 연봉을 깎으려 했고, 나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해야 했다. 간택은 내 몫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그렇죠. 1년을 쉬든 2년을 쉬든 능력 있으면 알아서 모셔갑니다.”


그랬나 보다. 능력 부족. 현실 도피.


멋진 모험을 꿈꾸며 떠났던 캐나다 생활이 족쇄가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니, 그래도 갔다 오길 잘한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떠나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외국에서 살아보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 나이가 될 때까지 해외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계속 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볼품없는 귀환 후, 나를 먼저 찾는 곳은 없었다.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스스로 셀링을 하지 않으면 “나 여기 있어요.”라고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때의 나는 그저 운이라도 좋으니 동아줄 하나만 생겼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면접 보는 곳마다 오래 다니지 못했다. 며칠 다니다 보면 도저히 못 다닐 이유가 하나둘씩 생겼다.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대로 여기저기 떠돌다가 정착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 고민이 깊어질 즈음,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야. 뭐 하고 살아? 캐나다에서 돌아온 거 아는데 왜 연락이 없냐?”


예전 같았으면 밝게 받아쳤을 말이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그냥 있어.”


하필이면 신세한탄까지 하게 될 줄이야.


“취직하기 진짜 힘들다. 가는 곳마다 거지 같아. 아니, 내가 거지 같아서 그런 곳만 걸리는 건가…”


한참을 잠자코 듣던 친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우리 회사 면접 보러 와. 사람 부족해. 그리고 너 정도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어.”


“어? 갑자기?”

“갑자기는 지랄. 일단 우리 회사 다니다가 나중에 이직하든 말든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이력서 작성해서 보내. 알았지? 끊어.”


생각해 보면 인생의 갈림길마다 너랑 안 엮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채팅에서 알게 된 인연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


소극적이고 답답했던 나를 편견 없이 받아준 것도 너였고, 내가 힘들 때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도 항상 너였다.


첫 정모 때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던 내 옆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줬던 것도 너였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프로그래머라는 꿈을 함께 꿀 수 있게 용기를 준 것도 너였다. 연애 문제로 괴로워할 때도 묵묵히 술을 마셔주던 친구 역시 너였는데.


이제는 직장 구하는 문제까지 도와주는구나.


‘고마워.’


하지만 남자 사이에 “고마워.”라고 말했다가는 서로 어색해져서 결국 “꺼져버려.” 같은 말만 나오겠지. 그래서 그 말은 그냥 마음속에만 삼켜버렸던 것 같다.


결국 친구의 소개로 회사에 들어갔고 4년 동안 꾸준히 다닐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돈도 모았고 결혼도 했고, 다른 회사로 이직할 발판도 만들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 네가 내게 내밀어 준 손이 동아줄이었다는 걸.


귀촌 후 연락도 뜸해졌고 얼굴 못 본 지도 꽤 오래됐다. 그런데 오늘따라 문득 네 생각이 난다.


아마 다음에 만나더라도 나는 끝내 고맙다는 말을 못 할 것 같아. 그럴 생각도 없고.


그래서 그냥 글로만 몰래 남겨두려고 해. 어차피 이 글은 나만, 아니면 이름 모를 몇 명만 읽고 묻힐 글일 테니까.


바람에 먼지가 실려 가듯

너에게 느끼는 고마움도 그렇게 흘려보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