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날만 되면 나가기 싫어

322 걸음

by 고성프리맨

약속날만 되면 취소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또 뭐람…

분명 약속 잡을 때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한두 번이 아니다.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늘 그랬었다. 나가면 즐겁게 놀 거면서 막상 디데이가 되고 나면 집에 틀어박혀서 쉬고 싶은 마음 밖엔 들지 않았다.


“나와 그냥!”


누가 리드라도 한다면 어쩔 수없이 나가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갈 텐데.


“어. 알았어. 다음에 봐.”


상대가 쿨내를 풍기기라도 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잘됐네. 오히려 편히 쉴 수 있게 됐잖아?


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같이 살고 있는 가족에게도 나만의 디펜스룰이 자꾸 적용되는 거 있지?


아내와 아이들하고 잡은 약속조차도 당일이 되고 나면…


“아빠가 배가 아파서 그런데 다음에 갈까?”

“네. 그럴 줄 알았어요. 늘 그러시잖아요? 아마 다음에도 못 갈 거고 그다음에도 못 가겠죠! 기대도 안 돼요. 내년에도 못 가고 아마 평생 못 갈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속에서 ‘이 녀석이!’라고 혼내주려다가 아이의 말이 사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침음을 삼킬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내에게도.


“우리 내일 사우나 가면 안돼? 오늘 몸이 으슬거리고 힘드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난 갈래. 데려다줘! 오늘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갈 거야!”

“뭐?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꼭 가야겠어?!”

“어!”


어쩌겠나. 데려다주는 수밖에. 게다가 거짓말도 아니었다고. 진짜로 배도 아프고 으슬거린단 말이야. 그런데 마음은 왠지 미안함 반, 미움 반이었다. 솔직히 내일이 돼서 몸 상태가 좋아질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미루는 게 상책은 아니지 않겠어? 하지만 지금 당장 몸이 피곤하고 힘든 걸. 결국 내 분노는 오롯이 차가 받아내야만 했다. 분노가 실린 급가속. 이러다가 차가 “자꾸 이러면 나도 못 버텨?!”하고 화라도 내면 큰일인데. 가족뿐만 아니라 차한테까지 미안해지는 아침이다.


막상 집에 돌아오니 허무하다. 그냥 아내 따라서 사우나에 갈 걸 그랬나? 하지만 몸 상태가 들어가기엔 적절하지 않은 거 같았단 말이야.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울릴 뿐 받지 않았다. 이미 탕 속에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내 번호가 뜨는 걸 보고 받기 싫어져서인지는 본인만 알겠지.


미루고 미루기를 몇십 년 반복했는데 이 정도 미뤘으면 이제는 좀 덜 미뤄도 되지 않나 싶다. 아니 미루지 않는 걸 추천한다 스스로에게. 지금이야 이렇게 다짐해 보지만 역시 다른 약속이 또 비집고 들어오면 어느새 마음속에 미룰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겠지?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던데 “나 이미 글러먹은 거야?”

현실은 글러먹었을지라도 글 속에서는 깨어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어디 글러 먹은 사람이 쓴 글맛 한 번 맛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