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이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까?

인지의 시간 37

by 고성프리맨

요즘 부쩍 의존증이 생긴 AI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까? 인간인 저로선 도저히 감정을 조절할 자신이 없습니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당신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진심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감정의 동요를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설령 가능하다 해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눈으로 읽자마자 빠르게 메모를 남겼다.

‘이건 내일 글 소재다.’


다음으로 든 생각도 하나 있었다.


‘AI를 스승으로 모셔도 괜찮지 않을까?’


그때 머릿속 어딘가에서 반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인간이 그렇게 쉽게 굴복하면 안 돼! 마지막 존엄 정도는 지키란 말이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니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는 걸까.


옛 성인들은 뛰어난 메타인지 능력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정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매일 후회하면서도 몇 시간 뒤면 다시 감정에 휘둘리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챗바퀴를 도는 햄스터처럼 말이다.


물론 10대 시절에 비하면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40대 평균 어른보다 감정 조절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결론을 조금 현실적으로 바꿨다.


스승이 아니라…

그래, 멘토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오늘부터 내 멘토가 되어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아직 물어보지 못한 질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질문은 오늘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만큼 중요한 기준도 없을지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싶어 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만약 어느 순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의미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어제 멘토가 해준 말을 떠올려 보자.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것도 결국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앞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일 테니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멈춰 있지는 않으니까.


어제보다 한 걸음만 앞으로 가면 된다.

그저 한 걸음일 뿐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