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였다. 바닥청소부터 화장실 그리고 방에 이르기까지 대청소를 했다. 청소 도중 정수가 도착해 베란다 청소를 부탁했다. 당연히 정수가 구시렁거렸지만 점심으로 자장면 사주기로 하자 마지못해 해 준다. 그래도 정수가 와줘서 짐도 옮기고 베란다도 정리해 주고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다.
‘짜식. 고맙다.’
점심때가 되도록 청소는 아직 60% 정도밖에 완료가 되지 못했다. 묵은 때가 너무 많아 청소에 시간이 꽤나 걸렸고 특히 화장실 상태가 별로였다. 마음 같아서는 화장실 리모델링이라도 요청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도 아니고 요청한다고 들어줄 리도 없으니 지내는 동안 적응하는 수밖에.
”정수야 자장면 시킨다!”
”오케이! 탕수육도 먹냐?”
”당연하지. 세트로 간다.”
우편함에 들어가 있던 배달 책자를 몇 개 가져다 놓길 잘했다. 책장을 넘겨 가며 사진 상으로 괜찮게 보이는 가게를 하나 골랐다. 당연히 가성비도 제일 괜찮았다.
”오늘 꼭 전화기 개통하자 알았지?”
”당연하지.”
전화기 빌려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원. 정리 끝나면 준비하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다시 청소에 집중하는 사이 얼마 시간이 흐르지도 않은 거 같았는데 띵동 소리가 난다.
”와! 벌써 왔어? 정수야 문 좀 열어서 받아줘. 돈은 내가 지갑 꺼내놨으니까 거기서 결제하고.”
”엉. 오키.”
화장실 청소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만 더하면 그래도 괜찮을 듯하다. 나머지 찌든 때는 락스를 좀 사 와야 벗겨질 거 같은데.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야! 청소 멀었어?”
”아니 이제 곧 나갈게.”
”내가 세팅해 놓을게. 신문지 없냐? 하긴 뭐가 있겠어. 그냥 먹자.”
”엉.”
마지막으로 물을 한번 뿌려서 바닥에 남은 거품을 씻어내자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근데 수챗구멍에 물이 잘 안 빠지는 거 같아 내심 신경이 쓰인다.
’에이 정말. 나중에 확인해 보자.’
”안나와? 먼저 먹는다?”
”갈게! 성격 왜 이리 급해.”
후다닥 뛰어서 방 가운데로 간다. 정수가 나름대로 종이를 찾아내 조금 깔아 놨다. 음식 냄새가 허기를 더 자극해 입에 침이 고였다.
”와. 맛있겠다. 얼마 만에 자장면이야. 먹자.”
식사를 마무리하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정수와 휴대폰 가게에 들러 개통을 했다. 최신폰은 너무 비싸 적당한 가격의 모델을 찾아본다. 적당한 선에서 보급형으로 나온 휴대폰이 괜찮을 거 같아 그걸로 정한다.
”뭐 이리 빨리 골랐어. 다른 데 가면 더 싸게 구할 수 있을 텐데.”
”전화 없는 게 너무 갑갑해서 빨리 골랐어. 야 번호 저장해.”
내 폰에 번호를 저장하던 정수가 날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어제 소영이랑 뭐 했냐?”
”그냥 너 가고 나서 카페 갔다가 집에 갔어.”
”오. 데이트했네?”
”하.. 그래. 데이트했다. 그냥 대화만 했어.”
”어때?”
”뭘?”
”여전히 좋냐고.”
정수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인다.
”응. 근데 소영이 마음이 어떨지는 나도 몰라서.”
”와. 능력 좋네. 본지 하루 만에.”
”아니야. 그냥 내 맘이 그렇다고.”
”뭐. 잘해봐라. 혹시 잘되면 소개팅 좀 엮고.”
”아 이 새낀 진짜. 알았다.”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았지만 정수와 대화를 나누며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나 이제 간다. 이따 연락해.”
”응 잘 가.”
정수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소영이가 어제 적어 준 번호를 저장했다.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누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소영이가 조심스럽게 받는다.
”여보세요?”
”안녕 소영아.”
”누구.. 아! 개통했어?”
”응. 방금. 바빠?”
”아냐 괜찮아. 넌?”
”나도 괜찮아. 집안일 좀 하다 보니 벌써 오후야.”
”집안일도 해?”
재밌다는 듯 소영이가 쿡쿡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집이 너무 더러워서 안 할 수가 없었어. 화장실 특히 장난 아니야. 타일도 다 깨져있고.”
”그래도 장하네. 청소도 하는 남자라니 멋진데.”
소영이의 칭찬에 괜히 부끄러워졌다.
”나 한 시간 정도 뒤면 시간 괜찮은데 볼래?”
”좋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 그만큼 소영이의 말에 귀기울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너랑 하는 건 다 좋은데.’
”음.. 밥부터 먹어야지?”
”시간이 어중간한데. 영화 볼래?”
”영화?”
영화관을 갔던 게 언제더라. 기억도 잘 안 날 만큼 오래된 일은 분명하다.
”영화관 안 가본 지 오래됐는데. 내가 한국 물정을 아직 잘 몰라서. 혹시 괜찮은 거 해?”
”걱정 마! 이 누나가 다 알아서 해줄게.”
’아니 왜 자꾸 누나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그런 소영이가 귀여워 보인다.
”그래. 그러면 영화는 너한테 맡길게.”
”응. 마음 단단히 먹고 와.”
’응? 왜지?’
”응. 어디로 가면 돼?”
”메시지로 보내 놓을 테니 이따 극장 앞에서 봐.”
”오케이. 좀 이따 봐.”
기분 좋게 통화를 끝마치고 콧노래를 흥얼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