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앞에 도착하고 나니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빨리 도착했다.
’영화를 직접 예매했어야 하는데 소영이가 해놓는다고 했으니. 오늘 밥은 내가 사야지.’
무슨 영화를 볼지에 대한 관심보다 소영이를 만난다는 게 더 좋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입고 온 옷차림도 신경이 쓰인다.
’괜찮은 옷 좀 입을걸. 너무 편하게 입었나. 머리도 좀 잘랐어야 하는데. 좀 지저분한데.’
모든 게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혹시나 몸에서 냄새는 안 나는지 괜히 코를 킁킁 거리며 맡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영화관 한편에 위치한 팝콘 기계가 보인다.
’팝콘 정도는 미리 사놔도 괜찮겠지.’
”팝콘 콤보세트 하나 주세요.”
점원에게 다가가 주문을 한다. 시간을 보니 아직 한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참 안 흘러간다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툭 친다.
”어?” ”일찍 왔네?”
”안녕 소영아. 와..”
어제와 다르게 미니스커트에 라운드 맨투맨티를 입고 나온 소영이가 눈부시게 이뻐 보였다. 나도 모르게 말을 잇지 못하는데 그녀가 웃으며 날 본다.
”뭐야 그 반응은. 나한테 반한 거야?”
”아. 뭐. 그게. 음. 아참! 팝콘 먹지?”
”팝콘? 먹긴 하는데. 혹시 주문했어?”
”어어. 영화 예매도 했는데 팝콘 정도는 사고 싶어서.”
”진작 말하지. 나 쿠폰도 있었는데.”
”괜찮아.”
”기다려봐. 저기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소영이는 점원에게 달려가 취소 요청을 하더니 결국 재주문을 한다. 팝콘도 결국 그녀가 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팝콘과 음료를 들고 나타난다.
”봐. 5,000원이나 할인받았다고!”
”어.. 내가 사고 싶었는데.”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래. 대신 맛있는 저녁 사줄래?”
”그래! 먹고 싶은 거 말만 해.”
”호텔식으로 그러면.”
”아니 그건 좀.”
”농담이라고. 뭘 정색까지 하고 그래. 영화 보러 들어가자!”
그녀가 살포시 팔짱을 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혹시나 너무 크게 울려서 그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가자. 나도 민망해.”
팔짱을 낀 소영이는 조그맣게 얘기를 꺼내고서는 바닥에 시선을 둔 채 나를 이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항상 소영이가 나보다 더 용감하다. 먼저 마음도 표현하고 행동도 하고.
’맞아. 소영이가 나보다 더 솔직했어.’
”고마워. 늘 먼저 다가와줘서.”
대답대신 살짝 고개를 더 숙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말 오랜만에 오는 극장이라 기분이 새로웠다. 생각보다 극장 안에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지정된 좌석으로 이동해 앉았다.
”경남아. 너 무서운 거 잘 봐?”
”아니 진짜 못 봐. 꿈에 나올까 봐 절대 안보거든. 어 너? 설마..”
”푸하하. 별로 안 무서울 거야 걱정 마라.”
’불길하다..’
”사실 내가 호러물 매니안데 같이 볼 사람도 없고 마침 잘됐다 싶었어. 너무 무서우면 누나한테 기대라.”
”하아.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냥 좋아하진 않는다 정도야.”
그렇게 거짓말을 했고 대가는 혹독했다. 영화 본 시간이 한 1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같다. 거진 눈은 감고 있었고 귀도 틀어막기 바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소영이는 깔깔대기도 했다.
”소영아 안 무서워?”
”네가 너무 웃겨서 내용에 집중이 안돼.”
”나 장난 아니야.”
차마 너무 무서워서 나가고 싶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그래도 체면이 있지. 그 체면 때문에 난 오늘 몇 번 기절할 뻔했다. 알 수 없는 괴성과 심장을 옥죄는 음악이 잦아들더니 결국 영화가 끝이 났다.
”푸하하. 무서운 거 엄청 못 보내? 아까는 그냥 좋아하지 않는 정도라더니.”
”오늘 본 영화는 정말 내 인생 최악의 영화 중 하나야.”
”으이구 그랬어?”
놀리듯 말하는 소영이가 얄미웠지만 영화 보는 내내 손을 잡아줘서 그나마 덜 무서웠다. 오히려 잡은 손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 기쁘기도 했다.
”너 근데 내 손 엄청 만지더라?”
”아니 그거야. 너무 무서우니까.”
”아주 지능적으로 스킨십하려고. 너어.”
갑자기 가늘게 치켜뜬 눈으로 날 쳐다본다.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조금?”
”조금? 귀여우니까 봐줬다. 나 맛있는 분식집 아는데 거기 갈래?”
”분식? 다른 거 먹고 싶은 건 없어?”
”응. 생각만으로도 벌써 입에 침 고인다. 너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거기 즉석떡볶이가 진짜 맛있거든. 마무리도 밥도 볶아먹을 수 있는데 장난 아니야.”
”가자. 나도 배고팠어. 그리고 손.”
살짝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날 한 번 힐끗 보더니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잡아줬다. 소영이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