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12

by 고성프리맨

“소영아.”

”왜?”

”우리 사귈까?”

”뭐야 갑자기.”

”미안. 좀 갑작스럽지.”

”좀이 아닌데. 그리고 우리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근데 난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어. 너무 멋없게 고백한 건 미안한데 예전에 떠나면서 후회했던 그날이 계속 떠올라. 그때부터 쭉 후회했었거든. 어제 그리고 오늘 널 보고 생각했어. 내 마음은 그대로였어. 강요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봐 줘.”

”그랬구나. 알았어. 고민해 볼게. 용기 내줘서 기특하네.”


’기특하다는 건 무슨 의미지?’


소영이의 알 수 없는 답변에 한참 동안 생각해 봤지만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소영이가 잡은 손을 뿌리치진 않는다.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좀 참아보기로 했다.


”이 집인데 여기 진짜 맛있어. 고등학교 다닐 때 여기 없었으면 나 공부할 의욕이 사라졌을지도 몰라. 헤헤.”

”그 정도로 맛있다고?”

”응. 너한테 꼭 한번 맛보게 해주고 싶었어. 솔직히 말하면 남자친구 데리고 와보고 싶던 가게였거든.”


’남자친구!’


”뭐야 기분 나쁘게 웃고 있어. 너 설마 내가 사귀는 거 허락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 뭐. 알았어. 근데 내가 웃었어?”

”응! 완전 바보 같았어.”

”뭘 또 바보라고까지. 들어가자.”


그녀는 종이로 인쇄된 메뉴판을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익숙한 듯 체크하기 시작한다. 즉떡 2인분, 어묵, 라면, 순대.


”근데 이거 다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한참 남았지. 양 별로 안돼.”

”너 보기보다 잘 먹네? 말라 보이는데 신기하네.”

”휴.. 니가 몰라서 그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입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그냥 먹어. 넌 추가하고 싶은 사리 없어?”

”난 여기 첨 와봐서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줘.”

”그래. 나만 믿어!”


푸짐하게 담긴 냄비가 도착했다. 딱 봐도 둘이 먹기에 어마어마해 보이는 양이다.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는데 일단 도전해 보기로 한다.


”자 이제 끓었으니까 떡부터 먹어봐. 떡은 다 익었거든. 그릇 줘봐.”

”어. 고마워.”


참 친절하다. 내 접시를 가져가더니 먹을 수 있게 이것저것 챙겨준다. 그런 그녀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잘 먹을게.”

”어서 먹어봐. 따뜻할 때 먹어야 해.”

”우와! 진짜 맛있네. 근데 조금 맵다.”

”맛있지? 에이 뭐 이 정도를 맵다고 그러냐? 요즘은 훨씬 매운 거 많은데.”

”와.. 난 이 정도 맵기면 충분해.”

”약한 소리 하면 안 되는데. 다음에 나랑 닭발도 먹어야 하는데?”

”아니 벌써 먹을 거를 다 정해놨어?”

”내가 한국 투어 시켜준다고 했잖아. 난 약속은 꼭 지킨다고.”


’제 멋대로야 아주. 닭발? 아니 그런 걸 먹는다고?’


닭발 생각에 괜히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떡볶이는 정말 맛있다. 어느샌가 먹다 보니 냄비 가득 차 있던 음식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정말 다 먹었네? 세상에..”

”거봐. 양 별로 안된다니까.”

”배는 엄청 불러. 진짜 잘 먹었다. 단무지도 세 번이나 떠왔어.”

”아직 마무리가 남았습니다요.”

”네?”

”볶음밥은 꼭 먹어야 해.”

”소영아.. 무서워지려고 한다.”


음식 앞에서 배시시 웃는 그녀를 말릴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순응하기로 한다. 그렇게 우리는 볶음밥 2인분까지 거하게 먹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와.. 숨도 못 쉬겠어. 너무 배불러.”

”야. 한국인은 밥심이야. 그래도 생각보다 잘 먹네?”

”맛있긴 하네. 그래도 다음엔 조금 덜 시켜도 되지 않을까?”

”먹다 보면 늘어. 아무튼 1차 합격.”

”뭐?”

”그런 게 있어. 입 텁텁하지 않아?”

”응 좀. 커피 마실까?”

”그래. 여기 근처 학교 앞에 조용하고 저렴한데 있는데 거기 갈래?”

”난 다 모르니까 어디든 좋아.”

”그래. 괜히 기분 좋네. 내가 다니는 데 다 알려줄 수 있어서.”


그녀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배가 부르니까 기분이 더 올라갔는지 옆에서 쉴 새 없이 얘기를 한다.


’소영이가 이렇게 말하는 걸 좋아했구나.’


예전엔 전혀 몰랐던 소영이에 대해 알아가는 게 기뻤다.


”커피 사줘.”

”그럴 거였거든. 다른 데 보다 저렴하네.”

”내가 이래 봬도 엄청 알뜰하단 말이지. 기다려봐 그동안 모아놓은 쿠폰 있으니까 그거 제시하면 한잔 정도는 공짜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너 대단하다.”


그렇게 소영이의 소중한 쿠폰을 이용해 1잔 값으로 2잔을 마시게 되었다. 카페에서도 우리는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눴다. 엄밀히 따지면 들어준 거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만난 소영이는 생각보다 밝았고 말도 많았다. 약간 내향적인 나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난 자연스럽게 더 큰 호감이 생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