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13

by 고성프리맨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고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난 중학생 때 만나지 못했던 거에 대한 보상을 바라듯 온 마음을 다해 소영이를 챙겼다. 물론 소영이도 나에 대한 마음이 컸기 때문에 만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장맛비가 많이 내리던 그해 여름날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취소하고 각자 집에서 있기로 한 적이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 돌아다니기도 힘든 상태였다. 소영이와 통화하며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하며 약속 취소를 했건만. 오히려 그러고 나니 계속 소영이가 생각났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무턱대고 소영이 집 앞까지 뛰어갔다. 우산을 챙겼지만 강풍과 거센 빗줄기 때문에 우산은 없느니만 못한 상태였다. 한참 동안 헉헉 거리며 소영이가 사는 동네까지 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감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막상 도착했는데 이제 어쩌지..’


단지 앞에 상가가 열려 있어 비라도 피해야겠다 생각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내가 여기 왔다는 걸 알리는 게 좋을까 아닐까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했던 거 같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얼굴은 보고 가자.’


전화기를 꺼내 소영이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했네. 너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소영아. 헉헉."


숨이 차서 생각보다 말이 잘 안 나온다.


”경남아? 무슨 일 생겼어? 숨소리가 왜 그래?”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지금 왔어.”

”뭐라고?”

”잠깐만.”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지금 너네 집 근처로 와있어. 네 생각이 너무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어딘데? 올 거면 말을 하지. 비도 이렇게 오는데.”

”그러게. 미안. 내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그냥 보고 싶었어.”

”나갈 테니까. 어디 있어?”

”여기 상가 건물 안이야.”

”알았어. 좀만 기다려.”


전화통화를 끊자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과연 잘한 일일까?’


내 생각만 하다 괜히 소영이에게 걱정만 끼친 건 아닐까 싶다. 걱정이 더 큰 걱정을 만들어 내며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그녀가 왔다.


”뭐야. 옷 다 젖었네. 너 그냥 걸어왔어?”


소영이가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오더니 꼭 안아준다. 말 대신 나도 그녀를 안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녀도 내 품에서 한참 동안 흐느끼며 울었다.


”소영아. 미안. 너무 멋대로 행동했네.”

”올 거면 말을 했어야지.”


안았던 거리를 조금 넓히면서 서로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소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또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바라보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주변을 살짝 살피더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살짝 갖다 댔다. 그리고 한쪽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첫 키스를 나눴다.

잠시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입술을 떼고 감았던 눈을 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너무 빤히 들여다보는 게 민망했는지 소영이가 나를 살짝 밀쳐낸다.


”왜 이렇게 빤히 쳐다봐. 사람 부끄럽게.”

”네 눈동자에 내가 보여서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어.”

”정말? 눈동자에 비친다고? 나도 봐볼래.”


그렇게 얘기하고 소영이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와. 신기하다! 진짜 보이네. 너 근데 지금 보니까 눈동자 진짜 새카맣다. 막 빨려 들어갈 거 같아 계속 쳐다보니까.”

”내 눈 색이 까맣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내가 눈 색깔에 관심이 많아. TV 보면서도 연예인들 눈동자 색 유심히 관찰하곤 하거든. 정말 새카만 눈동자 가진 사람 흔치 않을 거 알아? 그래서 더 맘에 드네.”


그녀가 좋아한다면 눈동자 색이 까맣든 갈색이든 무슨 상관일까. 내 앞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너어. 이러려고 온 거야 설마?”


긴장이 조금 풀리자 소영이가 살짝 째려보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말을 한다.


”의도한 건 아닌데. 네가 가까이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하하.”

”이래서 남자를 조심해야 해. 쯧쯧. 아주 틈만 나면. 앞으론 좀 주의해야겠어. 내가 너무 편하게 해줬나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영이도 웃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더 귀여워 보였다.


”나 이제 소원성취했으니까 집에 갈게.”

”정말? 이렇게 보고 그냥 보내려니 미안해지는데.”

”아니야. 내 맘대로 보고 싶어서 왔던 건데 봤으니까 됐어. 집에서 부모님도 걱정하실 거 아냐.”

”아니 그렇게 부모님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여친한테 키스를 해?”

”야! 좀 조용히. 내가 언제 또 그렇게.”

”그나저나 너 다 젖어서 감기 걸리겠다. 저기 약국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같이 가자. 내가 약 사줄게.”

”약은 무슨. 나 건강체질이라 감기 걸린 적 없어.”

”허세 부리지 말고 그냥 오세요.”

”네.”


약국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별거 아닌 얘기에도 서로 깔깔대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