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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Dec 20. 2023

40대가 되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일곱 걸음

하루에도 마음이 수십 번씩 바뀐다. 논어 위정편에 따르면 공자님께서는 40대에 더 이상 미혹되지 아니하였다 하셨는데 어찌 난 이 모양일까? 가끔은 조울증이 의심될 정도로 기복이 심할 때도 있다.  


’공자님과 나의 40대는 전혀 다른 것일까? 역시 성인군자와 일반인은 차이가 크구나.’ 


약간 시시껄렁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미혹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나를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게다가 20대 때에 비해 오히려 질투까지 많아진 거 같다. 예전에는 마음으로 와닿지 않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감정도 어느 순간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어떤 때는 나랑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단지 내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질투를 느꼈다. 


”혹시 지금 고해성사의 시간인가요?” 


그건 아닌데.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작아지기 시작했고 작아진 마음의 크기가 다른 사람을 품을 만큼 안 되는 건 아닐까? 말로만 듣던 사람의 그릇이라는 건가? 




40대가 되면 정말 이것저것 들리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진 상태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했건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운 좋게 결혼도 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어떻게 보면 한 개인으로서 겪어낼 만한 일을 차근차근 겪은 편이다. 한때는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숙함이라는 게 생길 거라고 막연히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많이 보인다.  


아내에겐 참을성 부족한 남편이고 아이들에게는 살짝 무심한 아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결국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방향일 것이다. 그리고 후회된다면 어떻게든 지금의 모습을 바꿔야 한다. 


비록 여러 가지 흔들림에 취약하고 고민은 여전히 많지만 아직 40대는 무언가를 되돌릴 수 있는 나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바꿀 수 있을까? 


’마음부터 조금 가라앉혀보자.’ 


조금 덜 들뜬 느낌으로 일상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쉽게 들뜨는 편이다. 새로운 일, 사람, 기회 등을 만날 때마다 늘 그랬다. 그리고 들뜬 기분만큼 성과가 생기지 않을 때면 한 없이 우울한 감정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때로는 그런 기분이 태도처럼 변하며 주변에 있는 가족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따져보니 나 참 별로네.’ 

’별로인 걸 이제 알았어? 일단 별로인 점이라도 찾았으니 그것부터 개선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말이 쉽지.’ 

’그러니까 변하려는 행동을 해야지!’ 


흔들리는 마음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내 안의 뒤틀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상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사람인 것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불혹의 의미는 내게 있어 뒤틀리고 흔들린 마음을 바로 잡아 원래의 모습대로 돌리는 시기가 아닐까? 미혹이라는 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알아채고 바꿔갈 수 있는 눈을 가지는 시기. 내게 있어 40대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꼭 마음의 모습을 다시 잘 가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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