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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Dec 26. 2023

40대, 들러리는 지겨워.

여덟 걸음

인생에서 1등을 해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간접적으로만 이해할 뿐 어떤 감정일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 


마음먹는 것과 별개로 세상 일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 적은 별로 없었다. 학창 시절엔 상위권의 점수를 지탱해 주는 역할 중 한 명을 담당했었다. 회사 다닐 땐 누군가에게 쓰임새가 있기를 바라며 내가 올라설 수 있는 범위에서 최상단을 지향했지만 그 선도 어느 정도 명확했다. 


적당히 벌어먹고사는, 그렇다고 너무 가난하지는 않은 삶. 현실에서 느껴지는 객관적인 내 상황이었다. 한때는 [적당히, 평범한, 보통의]라는 의미대로 사는 삶도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직장인처럼 나도 그 속에서 티 안 나게 모난 돌이 되지 않도록 감정도 숨기며 지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대한 위를 쳐다보지 않으려고도 노력했다. 나의 이룰 수 없는 욕심이 화가 되어 돌아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컸으니까. 그리고 항상 1등의 영역, 최상위에 위치한 사람은 나와는 다른 종처럼 생각하며 지내는 데 익숙해져 갔다. 




적당히가 인생의 모토였던 내게 시련은 사고처럼 생겨났다. 다니던 회사의 리드가 어느 날 정리해고를 당했다. 


”쓰임새가 다하니 내쳐지네.” 

”회사에 좀 더 어필은 해보지 그러셨어요.” 

”됐어. 이미 우리는 어긋나 버렸어. 그리고 내가 제안한 조건 중 어느 것도 받아들여진 게 없어.” 

”…” 

”내가 떠나면 한 번 팀을 맡아봐. 혹시 또 알아? 기회가 될지.” 


건조한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의 길을 살아가게 되었고 내게 임시라는 형태로 경영진은 팀을 부탁했다. 적당히 평범하게 살기를 꿈꾸던 내게 있어 변수가 생기는 삶은 두려움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아닌 역할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할 수 없는 부분의 역할을 맡기지 않으신다면 좋은 분이 오기 전까지 병행해 보겠습니다.” 


경영진에게 이런 얘기는 아쉬움을 남기는 소리였다.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마지못해 조건 부 수락을 했고 그렇게 나의 쓸모를 어필하는 게 아닌 다른 사람의 쓸모를 찾아내는 역할을 해본다.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쓸 필요까진 없는 일인데 쓰다 보니 조금 부풀어지긴 했다. 하지만 평범함을 꿈꾸며 살던 개인에게는 상당히 큰 일이었다. 




이후 다시 일반 직원으로 여러 곳을 입사했다 퇴사하기를 반복한다. 퇴사가 잦아지는 날 보며 아내도 불안해했다. 


’왜지? 왜 적당히 버티며 다니는 삶에 만족이 되지 않는 거지?’ 


분명 일을 하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일에 대한 즐거움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내가 욕심을 내고 있는 건가?’ 


만년 들러리의 삶을 꿈꾸던 내게 더 이상 들러리 역할은 재미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들러리를 벗어난 역할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필요했다. 현실적으로 큰 회사는 뛰어난 사람이 많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난 평범 이하였다. 들러리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역할을 꿈꾼다면 내쳐질 게 뻔했다. 


’작은 회사로 가야 하나?’ 


하지만 작은 회사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혹시나 이력을 망치게 될 경우 이직하려는 곳에서 좋게 봐주지 않거나 무시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CEO의 의사 결정 하나에도 쉽게 결정이 바뀔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능력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욕심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마음이 원하는 방향대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들러리의 삶이 아닌 자립의 삶을 살아가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 나갔다. 자립을 위한 발걸음은 힘겨운 일이었다. 회사에서 터놓고 얘기할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고독함과 아쉬움이 쌓여갔다. 대신 나를 지탱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혼자서도 일할 수 있겠는데?’ 


점차 홀로서기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립의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회사도 떠났다. 물론 그 삶을 택한 이후 여전히 내 삶은 안개가 자욱하다. 누군가가 대신 앞서 가주던 그리고 장비를 제공해 주던 안락함은 더 이상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40대는 안정을 추구해야 해요.” 

”가족을 생각해서 몸 사릴 때죠.”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폭발시켜 가장 큰 인정을 받을 시기.” 


”맞는 말입니다. 인정해요.” 


틀린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평범하지만 단순한 진리는 여러 사람이 경험하고 내놓은 좋은 학습의 결과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많이 변해버렸다. 다만 조금 다르게 살더라도 인생이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40대의 삶을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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