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걸음
“퇴사하고 요즘은 어떤 일 하세요?”
백수라고 말하기는 좀 기분이 이상해서 뭐라도 지어내고 싶었다. 요즘 뭘 하고 있지에 대해 떠올리며 말을 건넨다.
”글을 좀 쓰고 있어요.”
”작가세요?”
”아. 작가라기에는 아직 정식으로 출판한 건 없어요.”
상대방의 표정을 보며 괜히 주눅이 든다.
”아.. 취미활동 하시는구나.”
”그리고 뭐 이것저것 고민도 해보고 자잘하게 시도도 해보고 그래요. 하하.”
”아하. 네.”
어색한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일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고성에 살면 심심하지 않으세요?”
”그다지 심심하진 않은 거 같아요.”
”뭐가 별로 없는데 신기하네요.”
대화를 나누던 중 궁금증이 생긴다.
’심심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던 문제였는데 타인의 질문 때문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겨났다.
”아마 제가 주로 집에서만 있어서 인가 봐요. 활동 반경이 그리 넓지 않으니 특별히 뭘 해야 된다에 대한 생각이 없는 편이에요.”
이런저런 대화를 찜찜하게 끝내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방이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늘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다. 분명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 나누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에 살다 보니 특히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어려운 점은 나를 소개하는 일이 생길 때다. 당당하게 ‘백수입니다!’라고는 차마 못하겠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분명 뭔가를 하고는 있다. 특히 지금처럼 글을 쓴다. 이런 말을 하면 결국 전에 만났던 누군가처럼 질문을 할 거 같다.
”글쓰기를 통해 돈을 버나요?”
”전혀요.”
”쓸모없는 일 하고 있으시네요.”
”그러게요.”
’아.. 난 쓸모없는 일을 꾸준히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구나. 쓸모없는 일인데 글은 왜 쓰고 있지?’
자답하자면 그냥 쓴다에 가깝다. 딱히 이유가 찾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재미있다. 쓸모는 없지만 재밌는 일. 내게 있어 글쓰기는 현재 그런 느낌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갑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솔직한 현재의 모습이니까.
보통 40대에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반대로 살아가는 중이다. 다들 쓸모 있어지고 싶어서 그리고 어딘가에 인정받고 싶어 노력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보면 절로 혀 차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지금의 생활을 2년 가까이 해보다 보니 이젠 나름 익숙해졌다. 그나마 직언을 해주던 사람도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혀를 차는 소리조차 듣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해졌다.
’드디어. 소음 없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됐어.’
쓸모없는 일이지만 하는 동안 그 어떤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노트북의 화면과 키보드 타자 치는 소리.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떠올려 보는 생각. 때로는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생각을 입으로 중얼중얼거리고 있을 때도 있다. 옆에서 누군가 본다면 이상하게 쳐다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행히 혼자 집에 있는 동안에만 하는 행동이라 들킬 염려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쓸모없는 일 할 건가요?”
”아마도요.”
”언제까지요?”
”글쎄요.”
기간을 정해두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지금은 지금의 느낌에 충실한 채 행동하며 살아가고 싶다. 40대의 난 어렵게 찾은 쓸모없는 일을 계속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