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걸음
환경이 바뀌면 많은 게 바뀐다. 과거에 같은 일상과 경험을 공유하며 지내던 사람과도 공유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자 자연스레 대화의 횟수는 줄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 받아들여야겠지.’
가끔은 놓아야 될 인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정하고 친했던 그때가 떠올라 붙잡은 인연도 있다. 때가 되면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그 뒤로 정적. 그도 나도 서로의 일이 궁금하지 않다. 어쩌면 궁금하지 않다기보다는 얘기를 해도 더 이상 접점이 없다는 것 때문은 아닐까?
관계의 변화가 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년이 채 안 되는 사이 과거의 인연 중 많은 사람과의 접점이 사라졌다. 대신 일이 아니라 사소한 얘기를 나누던 인연과는 여전히 대화를 나눈다. 부담 없는 이야기에는 큰 에너지가 쓰이지 않는다. 힘을 빼고 얘기하는 게 더 오래가는 관계의 비결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름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멀어짐은 그만큼 아쉬움도 크게 느껴졌다.
’그도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40대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20대 때처럼 궁금하다고 해서 함부로 연락을 하진 않는다. 물론 이것 또한 개인의 성향이겠지. 때로는 좋았던 기억만 가져가는 게 좋을 때가 있다는 걸 느낀다. 겨우 남아 있던 좋은 기억의 잔해까지 긁어모으고 나면 다 사라져 버릴까 싶기도 하다.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인연이 유지됐을까?’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다. 다른 멀어질만한 이유라는 건 언제든 생길 수 있으니까. 다니던 회사가 바뀔 수도, 일하던 분야가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인간관계에서 많은 걸 따져가며 만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인 거 같다.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편한 관계가 아닐까? 마냥 어린 시절처럼 쉽게 친해지고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지만 통하는 사람에게 굳이 나의 잣대를 가져가는 건 벽을 쌓는 행동이니까.
즐겁게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의 나와 그는 어느 순간 희미해져 가고 있다.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긴 한 거 같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바뀐 환경에 맞춰 멀어지는 인연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을 받아들이면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멀어지는 인연 대신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새로운 인연은 이제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긴 한다. 그렇지만 인연에 충실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쉽게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적당한 선을 지키는 만남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지금 그동안 애써 만들어 온 사회화된 모습을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모습을 굳이 바꾸려는 이유가 뭘까?’
문득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마음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데에 익숙해져서 가면 쓴 모습을 보여주며 진심이라고 착각해 왔던 것 같다. 가짜 진심이 아닌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갈 때 비로소 상대방도 내 진심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졌다. 어쩌면 지금의 글도 이런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