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걸음
남이 바라보는 시선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들. 내 삶이었다고 목소리 높여 얘기하고 싶지만 따져보면 다른 사람에게 혹은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뭘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던 걸까?’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벌거벗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퇴사와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은 내 모습을 마주한 순간 괜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많지는 않았지만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퇴사 후 계획을 얘기했다.
”시골 가서 살려고요? 농담하지 마요.”
”체면이 있지. 어떻게 다 내려놓고 살 수 있겠어요. 다시 생각해 봐요.”
”다른 사람들은 뭐래요?”
”몇 달 정도 지내기엔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 뒤엔 갑갑하지 않을까요?”
귀촌을 한다는 얘기에 들려온 걱정의 목소리.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한 걸까?’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마치 패배자가 된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내 자존감도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내의 한 마디.
”뭘 그렇게 남의 시선을 따져? 생활비를 보태줄 것도 아니고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결정했으면 가는 거지. 체면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면면히 따져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내게 있어 체면이 뭐길래 그렇게 부끄러워했을까. 체면이란 단어의 뜻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다.
’내가 선택한 귀촌이 남을 대하기에 떳떳하지 못한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선택한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냥 주변에서 많이 본 40대 가장의 모습이 아닐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별거 아닌 타인의 목소리에도 쉬이 부끄러워지다니. 문득 헛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대로 시간이 흘러 퇴사를 했고 귀촌도 했다. 타인이 우려했던 것처럼 지구가 멸망하는 느낌이 들지도 큰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은 조용한 생활에 적응이 된 상태다.
매일 아침 쫓기듯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을 비롯해 아내와 보내는 시간도 예전에 비할 수 없이 늘어났다.
귀촌은 내게 어색했던 둘째와의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언제나 바쁜 듯 쫓기며 스스로를 챙기기도 버거웠는데 지금은 원하는 만큼 내면의 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과거의 세상에서 크게 바라보던 것들로부터 벗어나자 새로운 시각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롯이 사용할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짐에 감사하게 되었고 그 시간을 활용해 하고 싶은 일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 속에 가식적으로 필요에 따라 꺼내 쓰던 여러 개의 가면도 더 이상 꺼내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내가 좋아하던 것들에 관심도 가질 수 있게 됐다.
나도 몰랐던 혹은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 귀촌은 내게 있어 새로운 기회가 돼주었다. 항상 용기가 부족해 할 수 없던 일들. 그중에는 체면 때문에 더러는 눈치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정말 많았다. 누가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놈의 체면이 문제였다. 그런 체면을 내려놓자 기회가 찾아왔고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기만 할 수는 없었다.
’체면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내겐 깨닫기 힘들었던 진실. 40대의 시작이 기대되는 건 어쩌면 홀가분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진실되게 시작하기 좋은 나이.
그렇게 40대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