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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08. 2024

40대, 어느 날 갑자기 자급자족의 삶이 다가왔다.

열일곱 걸음

자급자족 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듯 자급자족할 상황은 갑자기 생겼다.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할까..'


물론 회사 다니는 동안 늘 생각했던 질문이다. 당연히 답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상상만 하고 사라지는 유니콘 같은 질문일 뿐이었으니까. 언젠가 회사 공용 공간에 모여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장면이 떠오른다.


"글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니까요? 그래서 요즘 제가 하고 있는데 이게 또 괜찮아요."

"아니에요. 그거 힘만 들고 귀찮아요. 레드 오션이란 말이에요. 그거 말고 유튜브 해야 돼요."


언제나 등장하는 또튜브. 하지만 꾸준히 찍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잠시 하다가 접는 사람은 참 많은데.


"우리 동네에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가 하나 생겼는데 엄청 잘되더라고요. '처음엔 뭐 저런 게 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커지더니 옆 점포까지 임대해서 늘려버린 거 있죠. 저도 여유만 되면 당장 시작할 텐데."

"프리랜서로 투잡 뛰는 게 최고예요. 물론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하는데 그래도 본업에도 충실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얼마나 좋아요? 해볼 사람 없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끼리 창업해 볼래요? 여기 다 개발 능력 있는데 괜찮은 아이템으로 서비스 하나 만들어서 투자받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웃고 떠들다 마지막은 허무함으로 끝나는 자리. 그것이 전부였다. 나도 알고 그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는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니까.' 

'설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피해 갈 거야.'


평범했지만 각자의 생각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특별한 존재이기도 했다. 항상 예외가 존재할 거라는 기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단하다. 진짜 창업했대? 뭔데?"

"파스타 가게래."

"요리? 배운 적이 있어?"

"그거야 모르지."


요리라. 개발자에서 갑자기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했다니 신기했다. 나처럼 요리와 담쌓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쉽게 관심이 사라졌다.


어느 날 또다시 들려온 새로운 이야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작가가 되어 있었다.


"글 써서 돈을 벌고 있다고?"

"응. 그 사람 친구들이 작가 그룹이라더라고. 뭐더라 웹소설? 그래. 연재하면서 돈 벌고 있다더라고."


생각보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구나. 웹소설은 또 뭐지.




많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과 꿈을 따라 자급자족의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부럽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회사 밖은 지옥일 거야.' 라며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봤던 내용이 떠올라 오히려 홀로서기한 사람이 안쓰럽게 생각됐다. 그리고 어떻게든 회사 생활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 밖엔 없었다. 할 수 있는 일도 해본 것도 회사에 속해 일하는 거 밖엔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인생은 목표한 대로만 풀리진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찾아온 번아웃.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번아웃이었지만 극복 대신 휴식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생겨난 용기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자기야. 우리 십 년 전에 놀러 갔던 바닷가 기억나?"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그 순간 십 년 전 놀러 갔던 바닷가 마을이 떠올랐다. 우연이었는지 무의식 속에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때마침 아내도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당연히 반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 가볼까?"

"어?"


뭔가에 홀린 듯 살집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계약이 이뤄지며 이사 날짜까지 잡힌 상태였다. 


'마음만 먹었을 뿐이었는데 정말 짐을 싸고 있게 될 줄이야.'


그런데 두근거렸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삶의 계획과 여정.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고 있었다. 여유로워서도 연고가 있어서도 아닌 그저 즉흥적으로 선택한 결정이 전부였다.


"우리 1년 정도는 한번 여유를 가져보자."

"그러자."


처음의 감상적인 약속과 달리 한 달도 채 안 돼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긴 했다. 그래도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찾아온 자급자족의 삶.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런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걱정과 불안은 덤으로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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