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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01. 2024

40, 41, 42 그리고 그 후

스무 걸음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가 가장 잘 느껴질 때가 언제일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다. 햇수가 지날수록 학년이 오르고 키가 커지고 체중이 늘어간다. 그에 반해 어느 순간부터 물리적인 나의 성장은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있다.


미세한 변화는 있겠지만 키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고 몸무게가 그나마 좀 변동되는 정도?


만약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내고 있었다면 시간의 흐름을 지금보다도 더 무디게 느끼고 있진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회사와 집을 반복하던 생활. 아침이면 눈을 뜨고 교통수단을 이용해 회사를 간다. 일과를 마친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삶. 그나마 주말이 돼서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좀 더 늦잠을 자거나 미뤄뒀던 취미생활을 한다. 크게 예상 밖을 벗어나지 않는 삶의 형태. 물론 예상되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삶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안정감도 들고 좋은 면이 있다.


"지금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나요?"


특별한 삶이라. 생각해 보니 오히려 더 무색무취에 가까워지는 삶인 거 같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회사를 나가는 대신 책상 앞 노트북을 켜고 타이핑을 친다는 정도일까? 예전에도 컴퓨터를 켜고 일하던 모습은 동일하니 이것조차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아! 하나 달라진 게 생각났다. 흘러가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예전에도 나이를 먹고 있었고 지금도 나이를 먹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예전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나의 마음은 왜 그리도 불안에 떨었을까?


내 탓이겠지만 늘 불안했다. 언젠가 지금의 안정된 삶이 어떤 형태로든 끝을 맞이할 거라 생각했다. 그날이 온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알 수 없으니 구체적인 걱정은 뒤로 미뤘다. 뒤로 미뤄둔 걱정은 주기적으로 다시 나타나 날 괴롭혔고 그때마다 불면증은 커져갔다.


불안감을 잠재우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일을 하는 것. 그렇게 조금씩 워커홀릭이 되어갔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걱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느 순간부턴 일이 항상 최우선이었다. 그래도 그 결과로 먹고살 수는 있었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았을까?


어느 날인가부터 원하지 않던 손님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첫 시작은 만성장염. 매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녀석이니 이번에도 잠시 머물렀다 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잇몸질환. 그리고 그다음은 목과 허리 디스크 전조. 그다음은 침침해진 눈. 그리고..


내 선택의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많은 잔병을 가져왔다. 물론 일 때문이 아닐 수도 있고 유전적인 영향이거나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지.


자잘한 질병이 생길수록 다시 불안은 커졌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질병이 찾아오는 건 어떻게 해볼 수 없으니 도리가 없달까. 오히려 작았던 질병을 더 키우기도 했다.


악순환의 반복. 하지만 뾰족한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둔다면? 그다음은? 내 인생은? 우리 가족은?


"다들 그렇게 사는 겁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체념하고 살 것인가. 새롭게 살아볼 것인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회사를 떠나게 될지 전혀 예상은 못했다. 단지 나이가 들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퇴사하게 되리라고만 생각했을 뿐. 늘 머릿속에서 퇴사하게 되는 그날을 그려보긴 했는데 잘 그려지지 않더라.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퇴사를 하게 된다고 그다음 인생이 저절로 준비되지는 않는다는 것. 과연 퇴사 후에 난 또 뭘로 살아갈 수 있는 거지? 아직 이른 고민이니 또 뒤로 미뤄야 하는 걸까? 그러면 궁극적으로 해결되나?


한번 꼬리를 문 질문은 계속해서 그다음 질문을 생산해 냈고 그럴수록 골치만 아파졌다. 언젠가 비슷한 또래의 형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형..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해요?"


담배연기를 후욱하고 내뱉더니


"몰라. 그냥 난 그래. 회사에서가 아닌 내 손으로 돈을 벌더라도 단 돈 100만 원만 벌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 회사 다니면서 받는 월급보다 내 손으로 직접 벌 수 있는 100만 원이 더 크게 느껴질 거 같아. 그게 가능하다면 당장 그만둘 생각이야."


그랬던 형은 정말 퇴사를 결정했고 스스로 돈을 버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내게는 그의 모습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내가 바라던 모습은 저 모습이구나..'


하지만? 그는 나름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형의 모습 때문에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처음으로 주변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직장인도 삶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진지하게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맞아. 생각만 해서는 생각으로 그치는 거야."


그 뒤로 내 롤모델은 엄청난 위인이나 유명한 사람이 아닌 형이었다. 그가 했던 것처럼 나도 준비하고 내 것을 해나가며 살리라.


돌이켜보면 동기는 항상 작게 시작된다. 작은 소망에서 시작된 바람은 굴리는 눈덩이가 커지듯 점점 커진다. 특히 행동이 더해진다면 그 속도와 바람은 더 커지는 거 같다.


가끔은 실수도 한다. 속도 조절하는 법을 몰라서 엉뚱한 데 부딪쳐 커진 눈덩이가 부서질 수도 있고, 눈길이 아닌 모래밭으로 잘못 움직여 지저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굴려나갈 수 있다는 의지와 바람이 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40, 41, 42, 43... 계속해서 나이를 먹고 있고 또 먹어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함 보다 새로운 뭔가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살짝 커졌다.


40대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나이가 아니었다. 단지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적어도 내게 있어 40대는 그런 나이대가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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