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걸음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말을 꺼내도 괜찮을까?'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다음에.'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조심스럽다. 알 수 없는 그의 마음에 행여 부담이라도 끼치면 어떡하나 싶어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 끝에 결국 보내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삭이는 말과 글이 그렇게 쌓여가며 모르는 새 가까웠던 우리는 어느새 멀어진다.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잘 지내세요?]
[ㅎㅎ 잘 지내죠. 근데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갔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냥 평범하게 지내요. 어떻게 지내요?]
[저도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주고받는 메시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려워했고 주저했다. 분명 우린 친했던 사이였는데.
'쓸 말을 지어내기라도 해 볼까?'
고민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엇을 위해 지어낸단 말인가. 끊긴 메시지처럼 우리의 시간도
뚝 -
끊겼다.
그리고 다시 또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그 시간 속에는 더 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생각했다.
'마무리하지 못한 말을 좀 더 하긴 해야 하는데..'
가까운 사이였다고 느꼈던 건 착각이었나. 현재의 그가 아닌 과거의 그에게 말을 건네는 현재의 나.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상대를 마주한 채 덧 없이 말을 건넨다.
한번 맺은 관계가 지속될 줄 알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국 변해버렸다. 변한 건 죄가 아닌데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없음이 아쉽다. 그래서 과거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걸까.
오늘따라 많은 사람이 생각난다. 한때는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웃고 떠들었던 과거 속의 내 모습. 지나고 나니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청승맞게 뭐 하고 있어?"
"아니야. 그냥 이런저런 생각하느라.."
"그럴 시간 있으면 집안일 좀 하지?"
"아니.. 나 지금 생각 중인데."
"그 감성 잠시 넣어두면 안 될까?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였잖아! 정신 좀 차려."
"하아."
남편은 날이 갈수록 감성적이 돼간다.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톡 건드리면 눈물 흘릴 것처럼 청승맞아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할 일이라도 좀 해놓고 청승 떨면 뭐라고 하지나 않지..
아무것도 안 하고 저러고 있으니 휴. 하도 갑갑해 한번 얘기를 해줬다.
"아니 그렇게 고민할 바엔 그냥 연락해. 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야? 보통 아무도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 안 할걸? 혼자 괜히 저래."
"... 레알?"
"어."
하지만 또 고민에 빠진 표정. 으휴 꼴 보기 싫어. 남자가 돼서는 뭐 저리 깝깝하게 구는지. 그냥 연락해 보고 바쁘면 안 보고 안 바쁘면 만나면 되는 거지. 참 피곤하게 산다 살아.
아내는 이해를 못 한다.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
'지금 40대 남자의 감성을 무시하는 거야?'
근데 또 가만 들어보면 맞는 말만 하니 할 말이 없다. 한숨을 푹푹 쉬며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가만히 좀 놔두면 참 좋으련만. 혼자 사색에 빠져 있는 시간 자체가 즐거운 건데. 도통 이해를 못 해준다니까?
"다른 사람한테 잘하려고 노력할 시간에 나한테나 좀 잘해보라고! 청승 좀 그만 떨고."
"청승 아닌데?"
"뭘 아니야. 맨날 감정에 취해서는 아주 쯧."
"..."
아내는 전혀 이해를 못 한다. 같이 오래 산다고 다 아는 게 아닌데. 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기는! 두고 보라고. 나랑 비슷한 감정선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다니까? 보여주겠어!
그렇게 글을 쓰고 나니 부끄러운 고백글 하나가 탄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