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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13. 2024

40대, 퇴사가 주는 미련

열두 걸음

퇴사를 하루 앞둔 시점. 이번 퇴사는 이전과는 다르다. 지금까지의 퇴사는 다음 회사로 입사하기 전 잠시의 휴식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죠.”

”다들 그렇게 사는 데 그냥 좀 쉬다 돌아오세요.”

”뭐 할 건데요? 아.. 근데 그거 이제 별로 아니에요?”

”서울 벗어나면 큰일 나요.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하려고요?”


여러 사람의 공통된 목소리. 걱정..이겠지? 지금이라도 그냥 해본 말이었다고 할까. 솔직히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야. 이미 물은 엎질러졌어. 내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메여 있어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이었다. 대출이라는 현실적인 올가미는 점점 더 크게 불어갔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비참해질 수 밖엔 없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바라는 삶이 자유인지 방황인지부터 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단지 회사 다니기 싫어서, 일상이 지루해져서, 뚜렷하게 살고 싶은 방향은 없지만 천천히 알아보고 싶어서인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은 학생 때 끝냈어야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학생 시절엔 다른 고민들로 머리가 터질 거 같았던 거 같은데. 어쩌겠어. 이미 퇴사 하루 전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내일 퇴사소감을 뭐라고 얘기하면 좋을지 상상해 본다.


’평소대로였다면 아무런 원고도 준비하지 않았을 텐데..’


혹시 모를 아쉬움이나 미련을 떨쳐내고 싶었다. 물론 소감 한 마디 한다고 갑자기 남은 감정이 다 털어내지 진 않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의미 때문에 힘을 좀 주고 싶었달까. 하지만 그런 마음 때문일까. 소감은 전혀 써지지 않았다. 돌이켜 봤을 때 그다지 엄청난 업적을 이루거나 그런 거 같지도 않고. 괜히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서 꼴 사나운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소감이고 뭐고 그냥 쥐 죽은 듯 있다가 증발해 버렸으면 좋겠다.’


지금 회사는 다니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꽤나 있었는데. 문득 입사 첫날이 떠올랐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의심의 눈빛.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제대로 일을 못하면 치워버릴 거야!’라는 불신의 모습이었다. 그들도 의심하고 나조차도 의심하던 상황.  


’그래. 그래도 용케 버텨냈구나.’


지나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 잘 다닌 게 아니라 버텨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처음부터 내게 잘 맞는 옷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함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나를 사이즈가 정해진 기성복에 구겨 넣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


누가 시켜서 옷을 입은 건 아니다. 결국 옷을 입을지 말지는 내 선택이었으니까. 입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다르고 결국 중요한 건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퇴사 전날은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놔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일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긴 시간을 썼지만 결국 소감은 한 줄도 적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한 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약간의 오지랖을 부려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부디 좋은 결과를 내라고 응원을 하고 싶었는데 괜한 짓인 것 같고. 어느새 새벽 4시. 일찍 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려했던 계획은 이미 망했다. 그러다 든 생각.


’나.. 퇴사하고 싶지 않은 거 아니야?’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미련이 계속 생기는 게 이상하다. 그러니 새벽 4시가 되도록 잠을 못 이루지. 무슨 감정일지 정리해 보려 해도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소감은 무슨. 그냥 하던 대로 해.’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소감을 준비하기 전 상태로 돌아와 버렸다. 퇴사는 그저 나만의 이벤트일 뿐이다.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의 몫을 해야 하고 떠나는 사람은 정해진 대로 가면 된다. 쓰는 걸 포기하고 잠자리에 눕자 조금씩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불안한 마음, 후회되는 마음도 결국 쏟아지는 잠 앞에 점점 희미해져 간다.


’ 잘 자. 그리고 고생했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소감 한 마디를 끝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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