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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Nov 19. 2023

팔자 좋은 소리

두 걸음

40대는 생각보다 외로운 시기인 거 같다. 직장에 다니며 많은 사람이 주위에 있어도 이상하게 외로웠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은 이미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약한 부분, 힘든 부분을 털어놓으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조금 더 나이가 적은 동료에게 털어놓기엔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날도 평소처럼 갑갑함이 쌓이고 쌓여 누군가와 대화가 나누고 싶었던 그런 날이었나 보다. 문득 예전 동료였던 형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되었다. 그 형은 직장인인 내가 꿈꾸는 자영업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름 사업도 잘 되는지 인스타그램 포스팅도 화려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냥 그래요. 그래도 일은 재밌어요. 형은 어때요?”

”직장 다닐 때가 그립다. 아무 준비 없이 직장 접으면 고생이야.”

”그래요? 난 그래도 형이 부러운데.”

”난 네가 부러운데? 자영업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그렇게 말랑하게 접근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이야. 이게 아무렇게나 자리 잡는 게 아니란 말이지.”


’화제를 전환하자..’


”회사 생활도 외롭네요. 예전에 형이 했던 말을 이제 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뭐 그렇지.”


회사 생활을 그만둔 지 좀 된 형과 나 사이엔 생각보다 접점이랄 게 많이 없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서로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했다. 그러다 문득 정적이 흐르며 말없이 음식만 입에 넣기 시작했다.


”형..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나도 회사 그만두고 싶은데 어떻게 현실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방법이 있을까요? 형은 어떤 마음으로 그만두고 자리 잡아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잠시 생각하더니 내 눈을 피한 채 얘기를 꺼낸다.


”야.. 너 참 팔자 좋은 소리 한다.”

”네?”

”그냥 회사나 다녀.”


’팔자 좋은 소리.. 그다지 팔자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떻게 하면 회사 밖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진심으로 물어본 거였는데..’


그렇게 별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식사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바깥을 바라보며 아까의 대화를 생각했다. 다른 사람 눈엔 철없는 유부남의 생떼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멍 때리며 있는데 메시지가 온다.  


’회사 메신저네.’


지금 회사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해서 파트너분들이 접속이 안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빨리 조치하고 해결되면 연락 부탁해요.


오래간만에 멍 때리는 시간이 생기는가 싶더니 공교롭게도 일이 터졌다.


’잡생각 말고 일이나 해야 할 팔자구나. 그나저나 이게 좋은 팔자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물론 일을 사랑한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척했다. 물론 보람도 있고 재미도 느껴지는 일은 맞다.  


’내 인생에 지금 하는 개발일 보다 더 잘 맞는 일이 있기는 할까?’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때는 ‘프로그래머로 먹고살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니 배가 불러진 걸까?


’그건 아닌데..’

’단순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우울해진 건 아닐까?’  

’나 말고도 수많은 직장인이 겪는 그냥 단순한 고민일 뿐인데 왜 이리 심각하게 생각해?’

’가족을 생각하란 말이야!’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일에 집중이 잘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한다. 십 년 이상의 직장 생활에서 배운 건 감정을 항상 후순위로 두는 것이었다.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일부터 마무리 짓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  


’하필이면 장애가 터진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감정이 자꾸 앞서는 건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동료의 도움으로 겨우 장애를 해결했다.


여차저차한 문제로 장애가 생겼었는데 잘 해결되었습니다. 다음번에는 비슷한 상황 생기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잘 마련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모를 장애 상황을 대비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다음번에 같은 문제 생기지 않도록 꼭 매뉴얼 작성하고 대비방안 마련되면 회의 자리 만들어서 공유 주세요.


 ’일단 이걸로 안심이다.’


일은 해결되었는데 내 마음은 살짝 고장 난 듯하다. 평상 시랑 다르게 다시 또 그놈의 ‘팔자’ 얘기가 떠오른다. 잠도 오지 않고 이유도 모른 채 마음만 조급해진다.


’뭐부터 시작하면 불안한 마음이 진정될까?’


”여보. 잠 안 자고 뭐 해.”

”어? 이제 자려고.”

”어서 자.”

”응.”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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