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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점빵 Sep 29. 2021

능력주의는 완전무결한 것인가.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반칙 없이 이룬 누군가의 성과를 낮잡아 보는 건 옳지 않다. 크든 작든, 과정에서 쏟았을 노력은 있는 그대로 인정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목표하는 바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향해 오로지 본인의 부족함 탓이라 비난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 노력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로 충분조건이 아닌 까닭이다.


우리 사회의 계층 간 격차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었으니 보상의 크기 차이는 각자가 누리거나 혹은 감당해야 할 몫이라 주장한다.


능력주의 아래에서 소위 성공한 부류는 점점 자기 자신을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 여기게 된다. 스스로 경쟁의 승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취약 계층이 겪는 고통은 '능력을 기르지 않았거나 노력을 게을리한 대가' 일뿐이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 계층에 투입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능력주의는 보편적 복지와 균형적 분배에 관한 논의를 막아선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택한 우리의 현대사는 대체로 능력주의 사고를 지지해 왔다. 과연, 더 나은 삶을 얻지 못하는 건 오직 개인의 탓일까. 아니, 정말로 우리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받고 있기는 한 것일까.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 이러한 지적에 동의한다.


삶의 과정에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숱한 요소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가령, 타고난 재능은 태어날 때 우연히 얻은 것이고 그 재능이 높은 시장 가치를 갖는 시대에 사는 점 역시 명백한 행운이다.


찬란한 성공도, 가혹한 실패도 그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신봉해 온 <능력주의 담론>은 본래의 선의를 잃은 채, 오늘날 부의 불균형과 자본의 독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잘 못 쓰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능력주의의 환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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