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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점빵 Jan 08. 2022

새해 다짐

집밥 랩소디.

처가와 본가. 양가에서 보내주시는 반찬의 양이 상당하다. 물론 감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일지만 마음 한 편으로 부담스러운 것 역시 사실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빼곡하게 들어찬 밀폐용기를 마주할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나와 아내, 두 식구가 감당하기에는 양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처 먹어치우지 못해, 결국 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된 음식들을 버릴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무언가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양가 어머님들께 "조금만!"을 어필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다. "이 정도도 안 먹으면 너희는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라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해 마지않는  그 마음이야 모르지 않지만,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인 지 오래인 데다가, 둘 다 밖에서 일을 하니 점심도 당연히 밖에서 해결하고, 저녁 약속도 종종 생기기 때문에 하루에 한 끼 정도 겨우 집에서 차려 먹으면 다행인 우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읍소해 보아야,


"왜 멀쩡한 집밥을 두고 밖에서 사 먹고 다니느냐"는 엄중한 꾸지람이 돌아올 뿐이다.


어르신들의 뜻과 의지가 이토록 완고하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가 집에서 밥 먹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식사 루틴을 바꾸기로 했다. 다행히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하루 일과를 조정할 수 있는 '반백수 자영업자'이므로, 그날 별 다른 점심 약속이 없으면 집에서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이른바 브런치를 집에서 먹고 작업실에 나왔다. 다만, 내가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몇 끼 더 거든다고 해봤자, '한아름 받아와 한가득 내다 버리는' 지금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에 바쁜 자식들 밥 차려 먹는 시간이라도 아끼라고 음식을 만들어 보내는 일당신들의 기쁨이자 자기 효능감의 충족이라면 그깟 죄책감 정도 자식 된 도리로 감당해야지, 어쩌겠나.


그리하여, 내가 세운 올해 첫 번째 목표는 힘닿는 대로 집에서 밥을 먹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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