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친화적인 나라, 개 관찰기
소보다는 개가 많아요.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임에도 힌두교 문화권인 네팔이기에 소들이 많겠거니 했다. 막상 생활해 보면 소보다는 개가 많다. 개라고 해서 동네 언니들이 가슴에 품고 다니는 푸들, 마티스, 씨츄, 요크셔테리 등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카트만두에 사는 개들은 덩치가 크고 우렁차게 짖는지라 나 같은 겁쟁이는 깜짝 깜짝 놀란다. 간혹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면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네팔에서 지나가는 개들을 구경하며 그 재미를 알았다. 기나긴 코로나19의 봉쇄기간 중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를 활보하는 개들을 내 집 베란다에서 가만히 서서 구경한다. 또 이동시 건물 입구에 떡 하니 자리 잡은 개들이나 도로 한복판을 점거하여 지나가는 차들을 귀찮게 하는 개들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영역 표시를 하고 다니는 사자나 호랑이를 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개들이 그러고 있다. 개들마다 한 건물 또는 두 개 건물씩 자기 구역이 있다. 사람이야 지나가던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가게 앞에 누워서 낮이면 잠을 잔다. 드나드는 사람이 불편도 할 텐데 아랑곳없이 자고 있어서 가끔은 가게 주인이 나와서 비키라고 툭툭 치기도 한다. 가끔은 영역 싸움에서 진 것이 확실해 보이는 개들도 발견한다. 몸에 상처는 물론 털에 먼지와 쓰레기를 잔뜩 묻히고 어딘가 아픈 듯이 눈은 빨갛게 되어 건물과 건물 사이쯤에 웅크리고 있다. 가끔 노숙하시는 분들 옆에 누워있는 노숙 개도 보게 되는데 죄송스럽게도 사람이나 개나 다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가 오면 두 세마리의 개가 옹기종기 모여 서로 등을 붙이고 누워서 떨고 있는데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량하다.
대부분의 개들은 낮에는 잠을 잔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무렵이면 활동을 개시한다. 누가 누가 목소리가 높은지 대결이라도 하듯이 밤새 짓는다. 우렁차게 위협적인 짖음이 있는가 하면 끼깅거리는 소리도 있다. 사람의 소리가 잦아드는 새벽 무렵에는 개들의 소리가 도시 전체를 압도하여 새벽에 깨어나기 일쑤다. 처음에는 짜증스럽다가 나중에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궁금해지는 단계에 이른다. 어느 날인가는 너무 심하게 동네 모든 개들이 짖어서 아침에 관리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기를 원숭이가 나타나서 모든 동네 개들이 그리도 난리였단다. 원숭이랑 개가 상극이란다. 궁금증이 풀려 기분 좋던 순간, 언제부터 내가 동네 개 일에 관심 있던 사람 이였던가 싶어 피식 웃었다.
가끔 생각해본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의료혜택과 맛있는 먹거리에 둘러싸여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살지만 목소리나 생식능력을 제거당하고 낮에는 집에서 안락하게 또는 답답하게, 조용하게 또는 무료하게 가족만을 기다려야 하는 한국의 개들이 행복할까. 아니면 비록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고 병에 걸려 아프기도 하지만 마음껏 짖어 댈 수 있고 사랑하고 번식하고 무리 짖고 싸우고 사는 네팔의 개들이 행복할까. 지금은 힌두교 문화가 짙게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의 삶을 존중하는 네팔인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부처님의 뜻이 꽃피우고 자라나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땅이 이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집 개들
우리집 더 정확하게는 우리 아파트에도 이곳을 자기 영역으로 삼아 살아가는 개가 2마리 있다. 7~8살쯤 되어 보이는 털이 긴 언니 개와 이제 갓 1년이 되었을 듯 한 누렁이 동생 개다. 둘 다 암컷이기에 나는 나이 많은 쪽을 ‘언니’, 어린 쪽을 ‘동생’이라고 맘대로 명명했다. 처음에는 둘 다 무서워서 눈치 보며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봉쇄로 아무도 없이 인간 사람 1명인 내가 그녀 2마리를 매일 지켜보는 나날들이 6개월간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이 들기 시작한 걸까. 정부가 정한 아침 시간에 식료품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서면 졸졸졸 따라 왔다. 워낙에 커서 무서웠지만 내 앞에 와서 배를 보이고 눕는 모습에 두려움이 누그러졌다. 어느새 나는 내 장바구니에 개 껌을 담기 시작했다. 전국봉쇄로 관리인들이 오지 않음으로 그들이 배가 고플까봐 걱정이 되었던 거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내가 그들이 무서워 직접 얼굴보고 간식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간식을 주는 방법은 이렇다. 큰마음을 먹고 집 밖에 나간다. 언니와 동생을 발견한다. 간식을 흔들어서 보여주고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냉큼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죽기 일보 직전인 관계로 아파트 경내를 산책하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내게 다가오는 개들이 무서워서 ‘저리가’를 외치고 있는데 동생개가 한쪽 발을 절면서 힘겹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불쌍해서 나도 피하지 않고 서 있었더니 내 앞에 와서 배를 보이며 눕는다. 장갑을 끼고 살살 동생개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그때의 따뜻함과 평안함, 눈물이 핑 돌았다. 이국 땅에서 봉쇄령으로 수개월째 갇혀 있던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날 진정으로 동생과 내가 서로를 만났으리라.
그날 이후로 언니는 자기도 만져달라는 듯이 나만 보면 쫒아오고 심지어 동생은 건물 안에 어찌 진입했는지 내방 문 앞에서 잠을 잔다. 출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간식 주는 것도 어설프지만 서로 어려울 때 같이 있어 줄 것 같은 연대감이 생겨버렸다.
동생의 임신소식
동생이 사라졌다. 마음 붙일 곳 없는 이곳에서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던 존재였는데 수 주일째 보이지 않는다. 한 날 회사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녀를 통하여 아파트 경비에게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그는 아파트에 드나드는 모든 생물 즉, 사람, 개, 차 등에 대해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하지만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작은 개 어디 갔어요? 요즘 안보여요’
‘있긴 있어요. 안쪽 건물에서 쉬고 있어요. 임신했거든요’
‘(뜨악) 아직 1년 정도 밖에 안 된 애기 인데 임신을 했어요?’
‘아마 8개월쯤 되었을 거예요’
동생개가 어딘가로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의 기쁨도 잠시, 아직 애기인데 임신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들의 성장과 생애 주기를 내가 알지는 못하나 내 기준에는 애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작을 때부터 봐서가 아니라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줘야 나갈 수 있는 언니와 달리 그녀는 게이트 사이사이 빈 공간을 오가는 작은 몸이다. 사람들도 조혼이 성행하는 네팔에서 개들도 조혼인가 싶어 당황했다.
해산을 했는지 지쳐 보였지만 예전 같은 모습으로 동생이 나타났다. 간식도 잘 먹지 않는 것이 힘들었나보다 안쓰러웠다. 그러던 중 며칠만에 다시 그녀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낳은 강아지도 나는 보지 못했다. 언젠가 베란다에서 작은 박스에 움직이는 무언가를 사람들이 옮겨가는 것이 보였음으로 나는 동생의 아이들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녀가 몇마리의 강아지를 낳았는지 그녀가 어디 갔는지 묻지 않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무거움을 가슴에 새길 뿐이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 개 껌 간식만은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남겨둔 채 그녀가 사라진 수개월 뒤 나도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