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 제철 과일과 이상한 밀가루
제철 과일 구분 어렵지 않아요
세상이 좋아져서 연중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되도록 제철에 나는 음식을 찾아 먹으려 노력한다. 자연의 일부로 사는 내가 그 시기에 자연이 내게 선사한 선물을 먹으며 늙어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 비록 도시에서 자란 나는 제철 산물을 구분하지 못하여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하지만.
고맙게도 카트만두에서는 제철 산물을 구분하는데 인터넷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마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철에 나는 품목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냉장시설이 보편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일들은 감자나 양파처럼 매 대에 오른 상태로 판매가 된다. 바나나, 파인애플은 천장 또는 가게 옆모서리에 매달려 있다. 우리나라 편의점처럼 시내 곳곳에 포진한 과일 가게에는 대부분 착즙기를 비치하고 매 대에 있는 과일을 즉석에게 주스로 만들어서 판다. 오렌지, 석류 등 100% 생과일주스를 즉석에서 마실 수 있다. 냉장시설도 없는 곳에 냉동시설이 있을 리 만무하여 미지근한 상온의 주스이긴 할지나 영양가는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는 것은 신선식품으로 과일과 야채를 동시에 파는 우리네 풍경과는 달리 이곳은 과일가게와 야채가게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름이면 망고와 수박, 파파야를 흔히 보게 된다. 특히 망고는 크기가 크고 노란 인도산 망고를 시작으로 그보다는 자그마한 녹색 네팔산 망고를 맘껏 즐길 수 있다. 겉과 속이 노란 망고와 달리, 네팔 망고는 겉면이 짙은 녹색이며 속은 주황색이다. 맛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인생 최고의 망고이자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제일의 과일이다. 누가 내게 네팔산 최고의 제품을 꼽으라면 석청도 동충화초도 히말라얀 소금도 아니다. 망고이다. 한번은 네팔 사업가에게 한국으로 망고 수출하면 엄청 잘 될 듯 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생산은 해도 가공하고 포장하고 운송하는 기술이 없어서 어렵다고 했다. 아쉽다. 여름 내내 망고를 끼고 살던 내게 한 지인이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 ‘제철과일이라 몸에 좋을 거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한국 가서 몸에서 농약 검출 되고 싶지 않으면 잘 씻어서 적당히 드세요’.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 그래도 나의 망고 사랑은 멈추지 못하고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가을에 접어들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과가 그렇지 않았을까 싶은 야생 느낌의 사과와 배를 만날 수 있다. 마녀가 백설공주에게 주었던 사과가 이렇지 않을 까 싶게 작고 귀엽고 색이 이쁘다. 그러나 막상 갈라보면 퍼석한 식감과 수분감이 적어 실망감이 크다. 11월 하순이 들어서면 우리나라 귤보다 크기가 크고 껍질이 두꺼운데 알맹이는 달달한 네팔 귤을 먹는 것으로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 한라봉, 천혜향과 비교할 수야 없지만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진 과즙이 신선하다.
물론 이 밖에도 중국에서 수입한 감, 사과는 물론 태국에서 들어오는 용과, 구아바, 망고스틴 등이 있기는 하지만 장시간의 이동시간과 열악한 냉장시설로 높은 가격 대비 흠집, 곰팡이 들이 많아 가성비가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몇 안 되는 현지과일 위주로 골라 먹으며 살아간다.
처음 이 도시의 노점상을 보며 신기했었다. 옆에 가게서 파는 상품이나 그가 파는 상품이나 그의 옆에서 파는 또 다른 노점상의 상품이나 모두 동일한 상품인 것이다. 나라면 색다른 상품, 남들이 안파는 상품을 선정해서 팔 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냉장시설이다. 가게도 냉장시설이 없는데 노점상이 냉장시설이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그러니 그날 그날 시장에서 판매하는 품목을 가져와 그날 그날 팔고 그러다 보니 모두의 품목이 겹치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인 냉장고가 없음이 어쩌면 이들을 자연과 더 가깝게 살아가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전자제품을 네팔에서 판매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네팔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가전제품이 뭐예요?‘ 내가 물었다. 그분이 대답하기를...
“냉장고요, 한국같은 두분짜리 대형 냉장고는 아니고 소형이 가장 많이 팔려요”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살짝 놀랐다. 내가 기대했던 답은 에어콘, 세탁기, TV 등이었던 것이다. 냉장고의 존재가 너무 당연한 나는 집에 냉장고가 없는 것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던 것이다. 제철과일로 자연과 더 가깝게 살수 있다느니 미지근한 주스가 영양가는 좋다느니 하던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나기만 하면 고랭지 채소
카트만두와 그 인근 히말라야 지역은 14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이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대관령의 고랭지 채소가 700미터 이상에서 자란 작물임을 생각할 때 이곳에서 재배되는 채소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물론 높이 올라갈수록 맛있다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작물의 생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한 나이지만 과일과 채소 덕후 40년 입맛으로 평해보자면 이곳 채소는 맛나다. 비전문가적 나의 판단으로는 고도가 높아서 채소가 외형이 크지는 못하고 대신 안으로 응축된 듯하다. 하여, 한국처럼 색과 모양이 상품성 있지 않지만 집에서 키워서 5일장에 들고 나온 듯 한 채소들이 한국의 10분의 1 가격에 판매된다.
히말라야 산간지방에서 자란 감자는 특히 일품이다. 무스탕 지역에서 나는 감자가 유명하나 일반 감자도 훌륭하다. 감자에 얽힌 에피소드가 여럿 있을 정도로 네팔에서 내 감자 사랑은 유별나다. 한번은 달밧(네팔 전통식사)를 먹으러 지인들과 퓨전 네팔식당에 갔는데 사이드 메뉴로 시킨 웻지 감자가 너무 맛나서 3번을 주문하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지인들로부터 감자 편식쟁이라는 놀림을 감당해야 했다. 편리하게도 그 식당이 우리집 옆이라 주말이면 아이스크림을 사먹듯이 포장을 해와 먹곤 한다. 이런 연유로 안타깝게도 나는 다른 식당의 웻지 감자를 시도할 이유가 없었다. 또 한번은 감자와 애호박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감자가 익지를 않는 것이다.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네팔 야채는 왜 익지를 않느냐고 물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모두 잘 익는다는 것이다. 한참 후에 알았다. 그들 모두는 강력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나는 인덕션을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이후로 나의 감자요리는 그것이 된장찌개가 되었든 감자조림이 되었든 감자 프리타타가 되었던 전자레인지에 초벌을 한 후에 이루어진다. 불필요한 전자파의 섭취가 단점이긴 하지만 요리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고랭지 네팔 야채는 무이다. 길이는 한국 무와 비슷하지만 두께가 1/3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단단하게 응집된 네팔 야채답게 일반 생채도 살짝 절여진 무와 같은 쫀득한 식감이 있고 피클을 만들어도 생무 같은 신선함이 있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생선과 함께 무 조림을 할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나의 사랑 샬롯 양파는 보라색 양파로 크기가 작고 단단할 뿐만 아니라 껍질을 깔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입자가 단단하여 웬만큼 볶거나 삶아도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고 식감도 살아 있다. 이상한 것은 썰을 때는 눈물을 쏙 빼게 독하면서 매운 맛은 살짝만 물에 담가도 제거되어 샐러드에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이다.
그밖에도 양배추, 파, 부추 등등 다양한 야채들을 저렴하게 만날 수 있고 맛나게 요리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고구마가 없다. 우리 아버지는 텃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같이 키우시는데 감자는 키우면서 고구마는 없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나 만족한다. 빈약한 과일의 종류에 비하면 한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야채를 다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상하게 맛없는 밀가루
밀가루 성애자가 네팔을 방문한다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난생처음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맛없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과 출장을 쾌나 자주 다니지만 음식으로 고생한 적은 없다. 내가 현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빵과 커피, 과일과 야채 그리고 초코만으로 구성된 단순한 나의 식습관 때문이다.
네팔이라는 최빈국행을 앞두고 주변인들은 먹는 것에 대해 걱정했으나 나는 태평했다. 세상에 빵, 과일, 야채가 없는 곳이 있겠는가. 더불어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바게트가 바게트 맛이 아닌 곳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은 도착하고 1주일만에 무너졌다. 식빵이 식빵 맛이 아니고 브라우니가 브라우니 맛이 아니며 심지어 짬뽕면이 짬뽕면이 아닌 그런 곳에 내가 발을 내디뎠다.
카트만두에는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고 샌드위치, 버거, 파니니, 브라우니, 수제쿠키 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밀가루 음식은 모두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맛이 문제다. 뭔가 20%쯤 부족하다. A카페 쫀득함이 숙명인 브라우니가 퍼석거린다. B레스토랑 음식과 함께 나온 비스코티가 곰팡이 맛이 난다. C식당 빵이 종이 조각 같다. D카페 펜 케익이 구운지 3개월은 지난 듯한 냄새가 난다. E식당 짬뽕과 자장면이 스파게티면이다.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저 단순한 식사류의 빵인 모닝빵, 바게트, 식빵 등이 거무틱틱한 외관은 차지하더라도 모두 하나같이 종이 조각을 씹는 식감과 곰팡이 냄새를 풍긴다. 물론 맛있는 것도 1가지 있다. 카레와 같이 먹는 인도식빵(nhan) 하나는 예상했던 맛과 일치하고 먹을 만하다. 빵, 케익류, 디저트류, 면류 등 밀가루로 만든 모든 음식이 하나같이 예상을 뒤집는 경험을 선사한다.
네팔에 체류하는 한국인 모임에서 신기하게 맛없는 빵과 과자에 대한 화두를 던졌을 때 하나같이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누구는 내륙국가인 네팔이 밀가루를 수입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서 오는 중에 변질되었다고 추정했다. 누구는 인도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밀가루와 버터 등을 저렴하게 가져와서 만들어서 그렇다고도 했다. 누구는 농약 안 친 유기농 밀가루 혹인 빵이나 과자 제작 과정에 화학제품을 안 넣어서 그렇지 않느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다 곧 최근 파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반박 당했다. 파리의 바게트는 오직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만 넣어 만드는데도 맛만 좋다는 것이다. 나도 격하게 동감했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나만 이상한 빵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파는 식빵 한 줄을 들고 가는 인근 식당 종업원을 보았다. 이미 다양한 종류의 동일한 종잇장 맛을 여러 번 경험한 내게는 전혀 식욕이 당기지 않는 빵이다. 나는 문득 입맛의 차이는 아닐까 싶어졌다. 이들은 이게 맛 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 엄마가 음식 솜씨가 없어도 모두가 집 밥을 최고로 치듯이 말이다. 우리 사무실에 통역을 담당하는 현지인에게 물었다.
‘이번에 Dashine 선물로 네팔 Angan 과자 선물세트를 준비할까 해요. 받으시는 분들이 모두 네팔분이니 한국과자나 빵보다는 그편이 전통성도 있고 입맛에 맞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네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직원용은 한국 빵으로 해주세요. 한국 빵이 더 맛나거든요’